테오의 프랑스이야기

가난한 사람들과 문화 예술

by 편집부 posted Jan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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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프랑스 이야기
가난한 사람들과 문화 예술

년말 년시가 되고 추위가 몰려 오면 주변 길거리에서 구걸하든지 주무시는 분들을 보면서 가난을 생각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예술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어 왔는지 살펴본다. 
세월과 함께 가난의 개념도 많이 바뀌었다. 

가난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 절대 적인 가난이 지배하던 시절, 상대적인 빈곤감이 팽배한 시절로 다양한 가난의 개념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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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지하철의 빈민


밑바닥까지 가난한 사람들은 비참하기도 한다.
중세 말기 12세기, 13세기 가난한 사람들은 신의 사랑받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존중해야 했다. 말씀 책에 가난한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라고 인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이 믿는 신, 크리스챤들의 신 그리스도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날 때는 말구유에서 태어났고, 죽을 때는 비참하게도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기생충이 되어가는 상대적 빈곤한자들과 절대적으로 가난한 자들
이제 가난한 자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들은 한 무리를 결성할 수도 있고, 거리의 조직강도로 돌변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사람들의 시선이나 관점이 바뀌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할 만 했다거나, 그들은 아마도 남들보다 게으르기 때문에, 아니면 무능하기 때문에 가난에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 그들을 가두어 두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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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던 젊은이가 노숙하시는 분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모습 -빠리15구

저소득층에 속한 농부나 노동자들 중 나중에 더럽고 거칠고 갇힌 사고 속에 위험해질 수도 있다. 가난한 자들이 유랑민이나 부랑자가 되었을 때 그들은 인간적이라는 개념에서 서서히 멀어지며 사회의 기생충이 될 수도, 천천히 야수 같은 짐승이 되어 갈 수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발언권을 준 작가들
몇 몇 작가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을 쓰면서 비천한 사람들의 존재감을 알려주며 그 해결책으로 사랑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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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의 장편 소설 -레 미제라블

 에밀 졸라가 탄광촌 사람들의 짐승 같은 삶을 제르미날에서 고발했다. "한계인""단순한 사람들"로 가난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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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의 소설 제르미날


가난한 자들이 예술로 들어갈 때
가난한 사람들을 작품으로 그려 달라고 주문하는 부유한 독지가들도 있었다. 그들의 자신들의 하느님에게 잘 보이고 이웃에 선함을 알리고 그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거실 벽에 걸어 놓고 편안하게 감상한다.
화가들은 날품파는 노동자들을 그릴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모델로서 그리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기 이마의 땀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관점도 생각도 바뀐다. 

가난한 자들의 화가들
스페인 황금 시기에도 빈곤은 거리에 널려 있었다. 버려진 공간에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벼룩을 잡고 있는 아이의 순간 동작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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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요 - 거지 아이 134x160cm 1645 루브르 박물관

누더기를 걸치고 발을 더럽지만 바구니에서 흘러나온 감자와 물이 담긴 물동이 그리고 방금 먹다 남은 새우 껍질로 아이는 굶주림을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추는 따뜻한 햇볕으로 전체적인 장면은 따사롭다. 
아이의 자세는 우아하기 보이기도 한다. 당대 북쪽의 플랑드르 지방은 가난의 모습 걸인들의 모습을 일삼아 화가들에게 주문하여 집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무리요 Murillo, 카라바지오le Caravage, 르 넹 형제들les frères Le Nain, 죠르쥬 드 라 뚜르Georges de La Tour 와 같은 화가들이 작품에 가난한 사람들을 올렸지만 그들은 약간의 덧칠이 있었음에도 예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19세기 들어와 산업 혁명의 시대가 되고 도시 노동자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사회 계층 문제가 제기되고 가난이 사회 문제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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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르 넹 - 농부들의 식사-

 사람들이 집안 거실에 모여 있다. 농민들의 집에 유일한 크고 따뜻한 방이다. 여기가 잠을 자고,음식을 만들고, 식사를 하는 곳이다. 불가에 모여 긴 겨울을 보내야 하고 날씨가 불순하면 외출하지 못하고 이 옷에서 적업해야 한다. 
어른 셋이 식탁 둘레 앉아 있고 여인과 이아들 셋이 서 있다. 하얀 식탁보가 낮은 식탁을 덥고 있다. 그 위에 하얀 커다란 빵이 놓여져 있다. 두꺼운 껍질을 빵의 촉촉한 맛을 오랫동안 유지해 줄거다. 어른들은 붉은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고 있다. 
배경에는 두터운 천으로 지붕을 한 침대가 놓여져 있다. 
가운데 남성은 여유 있는 신분의 복작을 하고 있다. 하얀 목 깃으로 보아 노동 계급은 아니다. 머리와 수염의 스타일이 당대 고급스러운 신분을 보여준다. 
뒤에 서서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소년은 같은 복장으로 보아 아들인 것 같다. 당대 바이올린은 시골 사람들의 축제에 자주 등장하던 악기였다. 잔을 든 아버지와 악기를 든 아들은 같은 사회 계층을 보요주며 다른 동행들과 구별된다. 
왼쪽에 포도주 잔을 들이키는 농부 엮시 상대적으로 편안한 모습이다. 복장은 무릎 부분 이외  거의 꿰멘데 없이 깨끗하고 단순하다.. 농부는 구두도 신고 있다. 그 뒤에 농부의 부인이 신중하고 물러선 자세로 서 있다. 연한 빨간색 옷을 걸친 여인의 복장도 단순하다. 지방색을 갖는 특징 있는 옷들이나 디자이너의 옷들은 18세기에나 나올거다. 
여인은 눈을 내리 깔고 몸매는 일상의 노동과 빈곤에 지쳐 쪼그라든 모습이다.
오른 쪽에 앉아 있는 어른은 농부인지 거지인지 이방인인지 신분 구분이 안된다. 두 손은 깍지 끼어 모으고 겸손하고 조용한 이야기를 듣는 자세다. 모은 두 손이래 중절모는 무릎위에 올려 놓고 있다. 시선으로 보아 다른 세상의 생각에 잠긴듯하기도 하다. 
맞은 편의 어른은 둥근 모자를 쓰고 술잔을 들어 입에 대고 있었다. 
오늘 이 세 어른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무엇인지?

가난과 친한 예술가들
오노레 도미에Daumier, 빈센트 반 고흐 Van Gogh 그리고 루오Rouault 까지 가난을 전담해서 그린다. ...
특별히 농민 출신으로 이마의 땀으로 먹고 사는 농민들을 그린 장 프랑스와 밀레는 참으로 예외적인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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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프랑스와 밀레Jean François Millet (1814-1875) 만종L'Angélus유화, 1857년 오르쎄 미술관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황혼의 스러져 가는 빛 가운데 두 손을 모으고 하루를 정리하며 기도하는 부부의 풍경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늘에 나는 공중의 새들도 기도를 방해하지 않고 높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땅을 파고 감자를 캐낸 땅에는 농부가 남기고 간 깨진 감자들이나 흙이 뒤집히며 대기 중으로 나온 지절이들이 새들의 반찬거리로 나와 있을거다. 이렇게 생명의 선한 먹이 사슬은 하늘이 정한 법칙대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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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프랑스와 밀레 - 감자 심는 사람들  1861년 82.5x101.3cm  보스톤 미술관

재물이 없는 사람들의 침묵과 꿈과 두려움을 새로운 예술 역사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예술이 감추어둔 필요한 장면들을 이제 내 놓을 때도 되었다. 
 밀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에 한 말에 감동을 받았어 ... "그런 무관심은 내가 비싼 구두나 신사의 생활을 필요로 한다면 나쁘겠지만, 나는 나막신을 신고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라는 것이었어. 정말 그렇게 되었지.
따라서 내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막신을 신고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라는 말, 즉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잠자는 것에서 농민이 만족하는 정도에 자신도 만족한다는 점이야. 밀레는 그것을 실천했고, 사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어 ...-반 고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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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 감자먹는 사람들 1885년  82x114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가난한 자들이 더 많은 사회에서, 예술의 영역에서 그들은 저평가되었고 있는 자들과 직업이 보장된 자들만 귀족적으로 예술을 독점하는 것도 사회 문제다. 
우리에게 삶과 예술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무엇인가.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테오
bonjourbib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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