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예술 칼럼 (242)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10. 그리움의 대상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뮤즈들은 대부분 그들이 사랑하는 여자들인 경우가 많다. 모네와 모딜리아니에게는 그들의 아내가, 피카소에게는 그가 만나 사랑한 모든 여성들이 그랬다. 그들은 그들의 여자들을 모델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Camille Holding a Posy of Violets by Claude Monet in oil on canvas, done in c. 1876
모딜리아니가 그린 큰 모자를 쓴 그의 아내, 잔 에뷔테른
고르키는 그의 여동생을 자주 그리곤 했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다름아닌 그의 어머니였다.
Arshile Gorky, 목걸이를 한 여자(여동생을 그린 그림)
그는 작품 '예술가와 그의 어머니'를 통해 어머니의 죽음과 그에 따른 상실감을 표현했다.
Arshile Gorky, The Artist and his mother, 1926-36
그가 22세 때 그리기 시작한 이 초상화는 8세 때 고향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바탕으로 장장 10년에 걸쳐 제작됐다. 하지만 그는 사진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았다.
코트를 입은 어린 아들 옆에는 결연한 표정의 엄마가 앉아있다. 실제 사진에서 어머니는 화려한 꽃무늬의 치마를 입고 있지만 화가는 이를 하얀색으로 대체했고, 색은 칠하다 말았다.
"눈을 감고 엄마의 긴 앞치마에 얼굴을 파묻을 때마다 엄마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라고 고르키는 회상했다. 그에게 앞치마는 엄마와 동일시되는 그리움의 대상이자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과 같았다. 그래서 하얀색으로 칠하다 결국 마무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화가는 엄마의 양손도 하얗게 칠해버렸다. 손은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역할을 하는 중요한 부분인데 왜 그랬을까? 하얀 보자기에 쌓인 손은 어머니의 보살핌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가 10년을 매달리고도 이 그림을 완벽하게 완성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 그의 어머니에게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굉장히 컸기 때문일 것이다.
Arshile Gorky, How My Mother's Embroidered Apron Unfolds In..., 1944
11. 자연의 소리를 그림을 그리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고향인 아르메니아로의 귀환, 즉 유년기를 보낸 정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을 담고 있다.
Arshile Gorky, Garden in Sochi, 1943
여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년의 고르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늘 '정원'에 관한 꿈을 꾼다. 마치 내 속에 깃든 고대 아르메니아인의 정신이 나로 하여금 우리가 사랑했던 자연의 모습을 그려내라고 부추기는 것 같다."
그의 고향 크호르콤 등지의 정원, 밀밭에서 노닐며 그가 사랑했던 자연의 모습을 그는 늘 그리워했다. 죽기 전, 고르키는 '쟁기와 노래'라는 제목의 연작을 제작했다. 그는 이 두 가지 상징물을 미국문화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Arshile Gorky, The Plow And The Song, 1947
이 작품도 고르키의 다른 작품들처럼 사실주의적인 회화와는 달리, 그려 놓은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고르키는 보이는 사물의 외관상의 모습보다 끊이지 않고 연결되는 계속적인 선들을 음악의 선율과 같이 이어나가면서, 그 사이에 나타난 다양한 모양들에 색을 채워 나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유화의 무거운 질감이 없다. 오히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빨강, 노랑, 파랑, 초록색 모양들의 음악적인 경쾌함이 느껴진다.
고르키는 많은 작품을 자연에 나가서 새소리와 벌레소리를 들으며 만들었다. 풀들과 벌레들의 '대화'를 그는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그가 어린 시절 미국으로 도망 와서 버지니아 어느 벌판에서 어린 시절에 농부들이 쟁기질을 하며 부르던 노래를 기억하면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도 다수의 미술애호가들이 고르키의 그림을 사랑한다. 그의 작품들이 감동을 주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바로 이 작품처럼 자연을 향한 그의 열린 마음, 애틋함이 그 중 하나일 것이다.
Arshile Gorky, Self-PortraitDate, 1927-28
(다음에 계속…)
최지혜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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