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예술 칼럼 (250)
“색이 나로 인해 자연의 논리로써 캔버스 위에 펼쳐지기를 원한다”
놀데가 자서전에서 고백하고 있듯이, 그는 어떤 지식이나 철학보다는 그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심연의 정신, 종교적 열망, 그리고 정열에 따라 작품을 완성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회화는 우리들에게 강렬한 열정을 느끼게 한다.
Emil Nolde, 열두살의 그리스도, 1911
Emil Nolde, Tier und Weib,1931-35
Emil Nolde, Frühmorgenflug,1938-1940
1910년부터 그는 특히 종종 민속 박물관에서 스케치를 하고 남태평양 같은 미개지를 여행하는 등 원시 미술에 포함된 절대적인 진실과 그로부터 나오는 강력한 힘, 그리고 직접적인 표현에 사로잡혔다.
Emil Nolde, Saint Mary of Egypt, 1911
이렇게 원시 미술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그는 자신의 회화에 또 다른 원천을 발견하였다. 특히, 극도로 단순화된 형태와 물질이나 매체의 특성으로 작품에 더해지는 새로운 신선함에 매료되었다.
Emil Nolde, Head of a South Sea Islander,1913-1914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산뜻하고 단순한 형태로 된 원시 미술과 더불어 그는 홀더와 뭉크의 작품 속 단순한 형태의 표현성에도 영향을 받았다. 이것들을 통합하여 그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과 존재를 간단한 요소들로 분해했다.
Emil Nolde, The Burial (Die Grablegung), 1915
그리고 이것을 넓은 지면에 풍부한 색채와 통합시켰다. 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다양하고 강렬한 색채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한 깊은 내면의 세계와 평생 추구한 자연의 원천적이고도 근원적인 힘을 표현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였다. 인상파 화가 마네, 고흐의 영향으로 얻은 밝고 강렬한 색채에 그는 자신만의 색깔을 더했다.
Emil Nolde, Christ and the Children,1910
Emil Nolde, Großer Mohn (Rot, Rot, Rot) (Large Poppies [Red, Red, Red]), 1942
"나는 나의 작품에서 색이 나로 인하여, 자연의 생성이 이루어지는 자연의 논리로써 캔버스 위에 펼쳐지기를 원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고정된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색의 표현력 그 자체가 힘을 발휘하는 회화를 추구하였다.
Emil Nolde, Gesellschaft (Party), 1911
그래서 그는 사물의 테두리를 그리기보다는 색의 덩어리 또는 색의 소용돌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윤곽선이 구성되도록 했다.
Emil Nolde, Red-Haired Girl, 1919
(다음에 계속…)
최지혜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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