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북핵 ‘그랜드 바겐(일괄타결)’ 추진해야”
핵 폐기 동시에 북 안전보장-국제 사회를 통한 대북지원으로 일괄 타결 제시
미국을 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21일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 핵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부분 폐기와 상응하는 대가를 동시에 주고받는 ‘일괄타결’ 방식을 제안했다.
북한 핵의 동결, 불능화, 폐기 등에 따른 단계별 비핵화 조처와 지원 방식을 바꿔, 북한이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단행한다면 한국과 미국 등 국제 사회는 북한에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자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미국외교협회(CFR) 뉴욕본부에서의 연설을 통해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통합된 접근법(integrated approach)으로“이제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북한에게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 타결, 즉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북한은 이러한 프로세스를 자신의 체제에 대한 위협이나 포위로 오해해서는 안된다”면서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함으로써 미국 및 국제사회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될 것이며 이는 곧 북한 스스로를 살리고 발전시키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제까지 북핵문제는 대화와 긴장상태를 오가며 진전과 후퇴, 그리고 지연을 반복해 왔다. 이러한 과거의 패턴을 탈피해야 한다”면서 “북핵의 완전한 폐기라는 본질적 문제를 젖혀둔 채 핵동결에 타협하고 이를 위해 보상하고 북한이 다시 이를 어겨 원점으로 회귀하는 지난 20년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일괄타결’ 발언과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그동안 북핵 협상을 단계별 처방·보상하는 식으로 진행하면서 타협과 파행, 진전과 지연이 반복돼 와관련국간 협의를 통해 북한의 불가역적 핵 폐기를 확실히 하는 협상을 진행하고, 그 직후 북핵 폐기와 400억달러 (국제협력) 기금 지원 등 대북 지원을 동시에 가져가는 이른바 ‘원샷 딜’(한 방 협상)을 추진해 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제안한 일괄타결 방식은 현실적인 정책으로 만들기가 어려운 구상이어서 북한이 즉각 호응할 가능성은 낮아, 성사되기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외교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에 대해 불가역적 조처를 취해야만 지원에 들어가는 것이어서 (기존 방식보다) 북한과 합의도 어렵고, 시간도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방에 나서면 대대적인 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비핵·개방·3000’ 구상을 대북정책으로 공약했다. 그러나 이는 대선 때부터 외부 전문가들은 물론 여권 내부로부터도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의식한 듯 이 대통령은 당선 뒤에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이라는 전제조건을 ‘핵 폐기 과정에 들어가면’으로 완화했다.
이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6자회담 복귀 뜻을 시사하는 등 ‘유화 공세’로 나오자, 21일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추진을 밝혔지만 구체적 실행 측면에서 보자면 ‘선 핵 폐기, 후 지원’이라는 기존의 기조엔 변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