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주년을 맞는 프랑스 68혁명

by 유로저널 posted May 0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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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무원 감원소식에 고등학교 교사들 뿐만 아니라, 학생에서부터 그들의 부모들까지 거리로 나왔다. 교육 공무원단체의 진두지휘아래 프랑스 공공 공무원들까지 시위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신들의 의견에는 귀를 막고 묵묵히 앞으로만 전진하는 프랑스 당국에게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파업도 감행할 것이라고 한다. 오는 5 15일부터 22일까지 약 한주간 노동단체와 공무원단체의 시위와 파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신 68혁명이 필요한 때!"

지난 집회때 시위대가 들고 있었던 피켓중에 유일하게 눈길을 끈 것이 있었다."우리에게는 신 68혁명이 필요하다"란 문구가 바로 그것이었다.올해는 68혁명이 일어난지 40해가 되는 해이다.이에 맞춰 프랑스 곳곳에서는 다채로운 기념행사도 열릴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68혁명의 정점인 5월 13일을 기점으로 예고된 집회의 수도 만만치 않아 큰 혼잡이 예상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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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혁명의 나라다.또한 파업의 나라이고,시위?집회의 나라이다.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시위?집회가 매달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진행된다.그만큼 국민의 목소리와 힘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이렇게 반영된 프랑스 국민의 의사는 프랑스 당국은 물론이고 전세계에까지 큰 파급을 미친다.     


68혁명의 시작


1978년 프랑스 대혁명 뿐만 아니라 1968년에 일어났던 68혁명에서도 역시 프랑스 국민의 목소리는 전 세계에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행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실 68혁명의 시작은 프랑스가 아닌 체코슬로바키아(현,체코공화국)의 프라하에서 일어났다.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구 소련 스탈린의 영향력에서 공산주의국가가 된 체코의 국민들은 자유와 권리의 억압 등 무자비한 공산주의 정책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이렇게 커진 국민들의 불만은 1967년 프라하 대학의 기숙사 문제로 폭발하게 되고,이 소규모의 학생 시위가 전 세계를 뒤흔드는 68혁명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일명 '프라하의 봄'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체코의 혁명이 진행될 즈음,전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그것이 바로 미국이 일으킨 베트남 전쟁이였다.이 전쟁으로 미국 내는 물론이고,전 세계 국민들은 깊은 분노를 느끼며 반전시위를 전개하게 된다.그리고 프랑스에서 진행된 반전시위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세계 역사상 유래없는 뜨거운 '5월'을 만드는 혁명의 도화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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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68혁명의 시작은 프랑스 파리근교의 낭테르(Naterre)대학이였다. 낭테르 대학교는 2차 대전 이후 급격히 증가한 학생들을 보충하기 위해 프랑스 관료들이 만든 대학이였다.애초 파리 빈민가의 경제 지역에 건립되어서 주변환경이나 대학 시설이 너무 낙후된 상태였는데,프랑스 당국은 무분별하게 학생수만 늘려가면서 학교 환경에는 무관심했다.낭테르 학생들의 불만은 점점 쌓여갔고,결국 당국에 대한 그들의 반발심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시위로 폭발하게 된 것이다.결국,반전시위에 참가한 급진파 학생들은 정부에 의해 체포가 되고,이 학생들의 석방을 위해 몇몇 대학생들은 대학 본부를 점거하기에 이른다.이것이 바로 3?22운동,혹은 낭테르 사건으로 불리우는 68혁명의 출발점인 것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프랑스정부는 대학교 폐쇄조치를 내리게 되고,분노가 극에 달한 학생들은 소르본느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파리 대학생들의 지지를 받게 된다.당시 드골 대통령이 이끌었던 극우성향의 프랑스 정부는 "기껏 부모들이 돈 들여서 학교 보냈더니 시위밖에 할 줄 모른다"며 학생 시위의 정확한 원인 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다.급기야 대규모 무장 병력이 침투해 학생 시위대를 진압하기에 이르고,소르본느 대학교는 물론 파리의 라탱(Latin)전 지역에 경찰이 배치된다.그리고 경찰들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시민들에게 무차별적 폭행을 가하기 시작한다.

5월 6일 파리 및 전국 200여개의 도시 3만여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정부의 정책과 경찰의 탄압에 맞서 시위에 들어가게 되고,드골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지 10년이 되는 5월 13일,파리 시위대의 규모는 약 100만명에 이른다.5월 14일과 15일, 혹독한 노동과 저임금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학생 시위에 가담하게 되자, 시위는 순식간에 프랑스 정부에 큰 위기를 안겨준다.이런 노동자의 시위 역시 엄청난 속도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결국 프랑스의 대부분의 공장은 문을 닫기에 이른다.무력과 언론통제로 시위를 무마시키려던 프랑스 정부는 결국 5월 22일 노동자들과 "그르넬 협약"을 맺게 되고, 노동자들의 시위는 6월 5일 최종 중단된다.그리고 큰 지지세력을 잃은 학생시위 역시 삽시간에 사그러진다. 이 틈을 노려, 프랑스 정부는 시위대를 잔혹하게 탄압하고, 6월 총선까지 시위를 금지하게 된다. 


68혁명이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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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역 절반이 넘는 시위에 가담했을 만큼 엄청난 열기를 자랑하던 프랑스의 68혁명은 6월 23일 총선에서 드골 장군이 승리함으로써 한달여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하지만,그 해의 혁명의 소용돌이가 후대에게 남긴 건 결코 실패가 아니였다.진보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이 기반이 되었던 프랑스 국민의 힘은 프랑스의 삼대 이념인 '자유?평등?박애'를 더 견고하게 다져놓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직업간의 차별 의식도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며,노동자들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조합들도 생겨나게 되었고,노동 환경의 혁신적인 개혁도 일어났다.의회에서는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등 참된 민주주의 정치로 한발 앞서나가기도 하였다.또 젊은이들은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연인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시민들에게 68혁명은 '패배의 모습'이 아닌 '위대한 혁명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피를 흘리며 쟁취한 자유와 평등의 참된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오늘도 그들의 자유와 평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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