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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정토회 법륜스님 해외순회법회

by 유로저널 posted Dec 1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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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정토회 법륜스님 해외순회법회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삶, 수행

정토회 법륜스님은 지난9월10일부터 12월 8일까지 미국, 영국, 독일(프랑크푸르트, 두이스부르크, 베를린, 뮌헨)등을 순회하며 여러가지 법문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하였다. 12월6일밤은 두이스부르크에서 즉문즉설로 강연을 했다.

2주전에 장소가 바뀐걸 늦게야 확인하고 오는 이들을 기다렸다가 7시40분경 법륜스님을 모시고 불상을 향해 합창하면서 최순진 씨의 인도로 법회가 시작되었다.
불교 신도가 아니거나 다리가 불편한 자는 소파에 앉아도 된다면서 편안한 자세를 허용했다.

삼보(부처님, 법, 스님)에 귀의한다는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외우고 법을 청하는 청법가를 함께 부르고 삼배를 스님과 신도가 함께 올리고 둥그렇게 원을 만들어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

즉문즉설을 그대로 올려본다.
질의: 가게에서 직원들이 실수를 하면 협조적으로 호소를 못하고 늘 야단을 칩니다. 친구들하고도 미운 것이 눈에 보이면 넘어가지 못하고 톡톡 쏘아주는 버릇이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너무 후회되고 부끄러운데 고치는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고쳐주세요.
설법: 고치는 방법을 몰라서 못 고치는 게 아니고 고칠 생각이 전혀 없어서 못 고칩니다. 고칠 생각은 조금 있는지 몰라도 마음은 고치고 싶지가 않습니다. 왜 고치고 싶지가 않을까요? 내가 보는 눈이 너무 옳기 때문에 고칠 게 사실은 없어요. 그러나 법문도 듣고 시간도 지나고 나니까 좀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고, 고쳐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정말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첫째는 안 고쳐집니다. 고칠 생각이 나야 됩니다. ‘아! 이건 정말 힘들구나. 고쳐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고쳐지는 게 아닙니다. 자기 내면의 깊숙하게 내가 옳은데, 잘못해야 고칠텐데 잘못했다 하는 생각이 잘 안 듭니다.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번째, 왜 이렇게 되는가? 하는 걸 먼저 알아야 한다.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두번째, 내가 고쳐야 되겠다. 하고 확실하게 결심을 해도 안 고쳐진다. 그 때 어떻게 하겠느냐? 이럴 때 방법을 묻는 거지 위의 질문은 아직 방법을 물을 때가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고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내가 사람의 행동을 보고 저 사람의 행동이 잘못 되었다. 행동이 너무 느리다던지, 행동을 너무 서두른다던지, 게으르다던지, 서투르다던지, 이런 행동들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럼 이런거는 어째서 일어날까? 왜 이런 생각이 들까? 왜 이런 분별과 판단이 일어날까? 사람은 누구나 다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공연히 그런 생각을 할 이유는 없다. 그 자가 문제가 있으니까 내가 이런 판단을 하는거다. 이게 우리 모두의 입장이다. 내가 봤을 때 상대가 문제가 있다. 실제로 문제가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행동에 객관적으로 문제가 있다. 내가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고 그의 행위에 문제가 있다. 만일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면 그 행위에 문제가 있다. 이렇게 우리는 저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지적을 하게 된다.  
사실은 이 모두가 객관적 인 것 같은데 깊이 관찰해 보면 주관적인 것이다.
나에게 인식되어진 것이다. 나에게 인식되어진 것이다. 라고 하는데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내 업식에 투영된 모습이다. 또 하나는 내 관점, 내 위치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예를 들어 결혼한 남자가 호텔커피숍에서 부인 아닌 다른 여자와 커피를 마시면서 다정하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보고 지나가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의 부인이 이 현장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그의 부인이라는 입장에서 봤을 때 문제가 될 것이다. 즉 그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부인이라는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문제가 있다. 반대로 아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남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문제가 있다. 다른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이 모두가 자기 위치에서 본 거다. 이곳에 컵이 놓여 있는데 왼쪽에서 본 자는 그 컵이 오른쪽에 있다고 할 것이고 반대쪽에 있는 자는 컵이 왼쪽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는 내가 서 있는 위치, 입장에 의해서 그렇게 인식되고 분별된다.

업식에서 온건 무엇인가? 본인이 지금까지 경험하고 살아온 것에 대해서 형성되어진 어떤 관념이 있다. 그 관념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동일한 관념을 갖고 있으면 동일하게 느껴진다. 동일한 위치에 있으면 동일한 방향이 되듯이. 국을 떠 먹어보고 짜다고 할 때도 객관적인 설명이 아니고 내 입맛이 짜다는 것이며 자기 습관에 따라서 느껴지는 거다. 붉은 색이 들은 안경을 낀 자는 벽을 보고 붉다고 말하고 푸른색의 안경을 쓴 자는 벽이 푸르게 보일 것이다. 이렇게 각각 끼고 있는 안경의 색깔을 업식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각각의 업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업식: 끼고 있는 안경의 색깔, 인도 말로는 ‘까르마’라고 한다.)
내가 서 있는 위치, 내 입장, 내 업식에 의해서 그렇게 나에게 인식이 된다. 저건 잘했다, 저건 잘못했다. 저건 느리다. 빠르다. 등등의 분별이 일어난다. 그 분별은 객관적인 게 아니고 그 사람의 행위자체에 있는 게 아니고 즉 그 행위, 말하는 행동이나 자체 그것을 보고 나의 입장이나 내 업식에 투영되어졌을 때 일어난다.

이 모든 건 나의 마음에서 일어난다. 일체유심소저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일 뿐이고 그 행위는 그 행위일 뿐이다. 그 말은 그 말일 뿐이다. 그것은 그것일 뿐이다. 모든 것에는 스스로의 성품이 있다. 다만 인연을 따라 이루어진다.

법륜스님은 금강경, 반야심경, 일상생활등 쉬운 예를 들어가며 말씀을 풀어나갔다.

즉문즉설은 11시경 다과를 들면서도 이어졌으며 정토회에선 이 자리를 빌어 법회 장소제공을 한 이상호 전 복지회장 부부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잘 살펴보면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괴로움과 얽매임이 밖으로부터 오는 줄 착각하고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절,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행복과 자유를 구하지만 끝내 얻지 못한다. 그것은 안심입명의 도는 밖으로 찾아서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에서 일어난 어떤 괴로움일지라도 안으로 살펴보면 그 모든 괴로움의 뿌리가 다 마음 가운데 있고 그 마음의 실체가 본래 공한 줄 알면 모든 괴로움은 저절로 사라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일으킨 한 생각에 사로잡혀 옳다 그르다 모양짓고 그 모양에 집착해서 온갖 괴로움을 스스로 만든다. 한 생각 돌이켜서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즉시 사라진다. (정토회 수행문)
성불하십시오.

*인터넷으로 정토회와 법륜스님의 법문을 만날 수 있다. www.jungto.org
정토회 두이스부르크 법회는 매월 2,4주 오전 11시에 있으며
12월16일 동지 법회가 준비되어 있다. (문의. 이은희 Tel. 02102/81348)


유로저널 독일지사
오애순 기자(mt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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