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노래한 샹송의 거장, “쟝 페라” 타계.

by 유로저널 posted Mar 16, 201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질곡의 시대 속에서 시대정신을 노래한 가수 겸 작곡가  쟝 페라(Jean Ferrat)가 지난 13일(토요일),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Ardèche)의 한 병원에서 향년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산(La Montagne), 동지(Camarade) 등 수많은 프랑스인의 가슴속에서 사랑받고 있는 샹송의 가수 겸 작곡가 쟝 페라는 1930년 12월 26일, 오-드-센(Hauts-de-Seine)의 보크레쏭(Vaucresson)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1살 때,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였던 그의 아버지가 나치에 의해 돌아오지 않는 길을 떠나고 자신은 공산당계열의 레지스탕스에 의해 구출되게 되는데, 이 기억은 향후 그의 삶과 노래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해방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사를 위해 일하던 그는 1954년 파리의 여러 캬바레에서 오디션에 합격하며 본격적인 가수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공산주의 시인 루이 아라공(Louis Aragon)의 신봉자였던 쟝 페라는 그의 여러 시에 곡을 붙여 노래하기도 했으며, 사회참여와 박애주의를 주축으로 하는 급진 성향의 노래들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1963년에 만들어진 그의 노래 ‘밤과 안개’(Nuit et brouillard)와 1965년의 ‘포템킨’(Potemkine) 등의 노래는 방송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평생 200여 곡의 샹송을 만들어 노래한 쟝 페라는 1972년 빨레 데 스포(Palais des Sports) 공연 이후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의 작은 마을에 머물며 루이 아라공에게 헌사하는 두 장의 앨범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프랑스 공산당의 마리-조지 뷔페(Marie-George Buffet)는 "상실감이 너무 크다."라며 말하며, "우리의 친구, 우리의 동지 쟝 페라가 그의 친구인 시인들의 세상으로 떠났다."고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또한, "잊을 수 없는 그의 시적인 선율과 가사들은 다음 세대에도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다."라고 말하며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유로저널 ONLY 뉴스 에 게재된 각국 기사 내용은 한국 언론들이나 포탈싸이트에 보도되지 않았거나, 본지가 직접 취재한 기사들만을 보도합니다.
유로저널광고

Articles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