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정담(fireside chat) 15 , 본디오.빌라도의 죄

by 김 레이첼 칼럼 posted Apr 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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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변정담(fireside chat) 15
--- 본디오.빌라도의 죄 ---
 
요즘들어 한국에서는 학교폭력예방 설문조사가 전국적 규모로 시행되고 그에 따른 학교폭력근절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근본대책으로 "교육전반에 걸친 인성교육 실천방안"을 제시하고 학교를 중심으로 가정과 사회가 함께하는 학교폭력 예방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다.  

폭력 없는 학교, 왕따 없는 학교,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하여 새로운 학생 생활지도 지침을 마련하고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교사들의 책무성 강화, 학생 학업 중단예방을 위한 현장 컨설팅 강화, 나눔과 배려의 봉사활동의 활성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 학부모, 학생의 95% 이상이 인성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고 따라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하여 인성교육강화가 더욱 강하게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학교폭력을 경험한 학생들의 62%가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폭력을 경험할 정도로 초등학교 폭력은 일상화 되어가고 있다는 현실이다.

 1997년 어느 여중학생이 집단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왕따"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언론에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집단 따돌림의 문제는 비단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분제도 아닌데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은 집단 따돌림의 계속적인 증가와 그  폭력성이 더욱 잔인하기까지하며 비인간적인데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필자가 어릴 때는 중고등학교에서 일어나던 왕따가 최근 들어서는 그 연령이 낮아져서 초등학교의 어린이들에게까지 확산되는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존귀한 인격체이듯 나의 친구도 존귀한 인격체라는 사실을 교육시켜야 한다.
 
어린이들의 집단폭력, 조직구타, 자살유인 등은 우리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다. 

왜냐하면 그 주범들은 우리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른들은 우리 자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었던가? 

곰곰히 생각해 보면 저 멀리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용어야 다르지만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등등 흔히 말하는 당파싸움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닌지----------. 어느 일본 정치인은 "조선은 당파 때문에 망했다" 라고 지적한바 있다. 물론 필자는 그놈(?)의 말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너무 파벌짓기에 능숙하다. 원래 "당파"라는 말은 "붕당"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붕당이라는 말의 뜻은 특정한 학문적, 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모임에서 유래되었으며 우리나라 조선중엽에 양반들이 모여서 함께 뜻을 모으고 학문을 연구토론하며 정책적인 면에서도 뜻이 같은 사람들끼리 구성한 정치집단이었다.

붕당정치는 학문적 유대를 기본으로 형성된 각 붕당들 사이의 공존을 특징으로 하는 조선시대의 정치운영형태였다. 

공존에 입각한 상호비판과 견제를 원리로하는 붕당정치는 현대의 정당정치와도 유사한 점이 없지 않지만 정치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구성원 사이에 학문적 유대를 공유했다는 점이 오늘날의 파벌께임(?)과는 조금 다른 것같다.
 
조선시대의 붕당이 발달하게 된 원인은 다음의 세가지가 있었다.

첫째, 유학파의 대립, 둘째, 왕실외척의 내분  셋째, 제도상의 결함에 있었다.
        (지면이나 시간관계상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고---) 

이것은 마치 오늘날의 지연, 혈연, 학연 등을 따지며 심하면 영남, 호남을 가리는 집단형성의 모양새와 비슷하기도 하다.

다시 청소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왜?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왕따를 만들어 괴롭히는 짓을 일삼을까? 

심지어는 죽음으로까지 몰고가는 철부지들의 행동에 어른들은 어이없어 하지만, 어른들 역시 적과 동지(자기 패거리?)를 만드는데 익숙하다.  나치즘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바있는 카를 슈미트는 그의 저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정치는 곧 적과 동지를 잘 구별하는 것이라 한 구절을 읽었기 때문일까? 
 
어찌되었던 간에 지금 우리 국가나 크고 작은 모임의 단체장들은 인선에서 크게 잘못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자가 나랑은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국가 또는 단체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이라면 그의 의견을 수용하고 그에 합당한 직책을 맡겨서 그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새로운 정부 인사결정만 보더라도 개인의 능력이나 도덕성 보다도 충성도나 저돌성을 높이치며 구성된 인성 역시 또다른 당파이며  나아가서는 누군가 한사람이 왕따가 되는 아픔을 겪게 될 것이 아닌가 !  

심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만일 그런 일이 자주 많은 곳에서 일어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고장나게 하는 제도적 비극을 맞게 될 것이다.(이러한 비극을 끝내려면 제도와 관습을 바꿔야 될 것 같다)
 
상기와 같은 현상은 재외 동포사회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한인회 하나도 제대로 단일화를 못시키며 서로 반목질시하는 풍경, 회장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며 자기편으로 끌어드리기에 바쁘고 자기편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정확한 근거도 없이 흠담을 늘어놓고 한사람을 왕따시키는 작업을 한다. 

자신들의 단점은 보지 못하고 "종합비리 및 유언비어 세트" 같은  표정으로 남의 좋지 않은 이야기는 신이나서 떠들어 댄다.

마치 나치 선전부 장관의 직함으로 히틀러의 꼭두각시가 되어 자기들이 폴란드와의 전쟁을 시도해 놓고 그것을 역으로 뒤집어 씌우며 뛰어난 선전방법과 유창한 개짓는 소리(진실이 결여된 소리는 말이라고 표현할 수 없음)로 떠들어 대며 마침내 독일 국민들로 하여금 광신적으로까지 만들어 버렸던 괴벨스(Pall Joseph Goebbels)처럼 무책임하게 지껄여 놓는 소리들은 불협화음을 이루며 순식간에 한인사회를 과장된 헛소문의 수렁속으로 한 사람을 몰아 넣는다.
 
십년도 넘은 시간에 그 어떤 괴벨스를 닮은 놈 또는 신종 괴벨스 같은 종자들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떠들어대는 그 개 짓는 소리에 진상을 알아보지도 않은채 그 헛소문의 주인공의 손발을 묶어버리는 일들! 그래서 왕따가 만들어져가는 일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사람)들은 개짓는 소리가 나면 문을 열고 왜 개가 저리 짓는지 이유를 알아나 보고 또 다음 사람에게 말들을 하기 바란다. 왜냐하면 개가 짓는 이유도 여러가지니까 말이다. 

낯선 사람이 와서 짓는 경우 도둑이 들어서 짓는 경우, 또는 배가고파서 짓는 경우가 다 다르니 말이다. 그런데 사람모습을 하고 개짓는 소리를 내는 부류들은 대부분이 배가 고파서 짓는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비겟덩어리라도 하나 던져주면 조용할 것 같은데 필자는 도무지 그런 부류들은 메시꼬와서 잘  못 달랜다. 차라리 진짜 강아지는 참 좋아하는데------. 
 
어느 모임이나 크고 작은 단체의 장은 반드시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특히 정치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국가안보와 정권안보를 동일시하며 반대와 불충을 혼돈하는 오류를 범하듯이 소수단체의 장들 역시 자유와 무질서 그리고 그 단체의 공익과 사사로운 감정을 구분조차 못한다면 어찌 그룹의 리더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마치 저 1세기초에 뭇사람들의 음모와 시기심에 휘말려서 왕따 당해 잡혀 온 예수를 심문한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us)가 예수에게서 사형에 처할만한 혐의점을 찾지 못하여 군중들을 설득도 해보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명절인 유월절 특별사면을 해주고자 노력하였으나 유대군중으로부터 왕따당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차라리 살인범인 바나바를 사면시키라는 군중들의 함성에 혹 폭동이 일어날까 두려운 나머지 할 수 없이 예수를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 

사형언도를 하기전에 빌라도는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군중을 향해 말하기를 "이사람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그 죄값을 너희가 당하라" 는 말에 백성들이 대답하기를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라고 하였다.

그 결과 재판장 빌라도는 예수에게 무죄함을 알면서도 사형집행선고를 내렸다.
 
빌라도 자신은 아마도 "나는 어쩔수 없었어, 죄없는 예수를 죽인 것은 내가 아니야, 백성들이야!"라고 스스로를 위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세계의 모든 기독교인(천주교 포함)들은 매주일 또는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할 때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한다. 빌라도가 백성들 앞에서 손을 천번만번 씻었은들 2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자로 기억되고 있으며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결국 방망이를 두드림으로써 예수의 생사여탈을 좌우할 권한을 갖고 있었고 최종결단을 내린자도 총독인 빌라도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최고 리더의 책임은 무거운 것이다.
 
혹, 정치가, 사업가, 법률가 또는 대소그룹의 대표자 및 임원들은 직책에 대한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책임을 질 각오로 정의롭고 공평한 지도자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빌라도처럼 폭동이 두려워 과오(죄)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 될 것이며 때와 경우에 따라서는 다수라도 잘못된 의견일 경우 올바른 자기소신으로 일을 처리하는 용기와 과감한 결단력이 요청된다.
무조건 다수의견만을 쫒아야 한다면 아동들의 집단폭행이나 왕따놀음도 다수쪽에 방망이를 두드릴 것인가? 

빌라도는 그 다수를 설득시킬 수 없었으면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각오하며 그들을 다 처벌해야 했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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