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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2018.06.04 20:11

오을식의 장편 연재 소설 (67) -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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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기억

5. 밤의 연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신의 한수 같아.”

그가 몸을 비스듬히 기대 누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정아가 물었다.

“솔직히 난 별 기대 없이 따라 왔거든. 형이 비행기로 날아가 바람이나 쐬자고 했을 때 난 싫다고 발을 뺐지. 추운데 불편한 몸 이끌고 다니기가 쉽지 않고 더구나 아가씨 불러 하룻밤 즐기자고 비행기를 탄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 근데 결정적으로 이게 환불이 불가능한 표라는 거야.”

“지금도 오신 걸 후회해요?”

“아니, 정 반대지. 신의 한수라니까. 이런 행운이 어디 있나 싶어.”

“형께 감사해야겠네요.”

“그렇고말고, 돌아갈 때 형 좋아하는 시바스 리갈이라도 한 병 안겨줘야겠어.”

숨을 내쉴 때마다 시큼한 냄새가 풍겼다.

“저도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이리 점잖은 오빠를 첫 손님으로 받았으니.”

정아는 자신도 모르게 나온 오빠라는 말이 간지러워 속으로 움찔했다.

“말이라도 그리 해주니 고맙군. 사실 누이는 기대 이상이야. 삐걱거리는 내 육체와 정신 모두에 아주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거든.”

정아는 이 남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다찌가 손님의 직업을 묻는 건 금기 사항이었으므로 직접 물을 수는 없었다. 행여 손님이 먼저 자신을 드러내더라도 아침 해가 떠오르는 순간 손님에게 들은 정보는 깨끗하게 잊어버릴 것. 그것이 우림각 다찌들이 공유하는 첫 번째 불문율이었던 것이다.

다소 거칠게 느껴지는 외모에 비해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단정한 말투와 부드러운 행동거지를 봐서는 학교 선생이나 화이트칼라의 회사원이 아닐까 싶었다.

“이름이 용아라고 했지? 무슨 의미지?”

“용아가 아니고 정아에요.”

정아는 그의 손바닥에 한글과 한자로 정아(貞娥)를 천천히 또박또박 썼다.

“음... 곧고 절개가 있는 미녀라는 의미 같은데.”

“맞아요.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이름과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구먼. 이렇게 예쁘게 낳아서 멋진 이름까지 지어주신 아버지께 늘 감사해야겠는 걸.”

“그래야 하는데... 아버지는 이미, 너무 멀리 계셔서.”

“고향이 여기가 아닌 모양이지?”

“고향에서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아요.”

그가 다문 입을 비죽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아의 뇌리에 밀짚모자를 쓴 아버지의 모습이 희미하게 스쳐갔다. 이어 근심이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도 떠올랐다.

어느 날 어머니는 인근에서 소문이 자자한 점집에 다녀와서는 정아를 불렀다. “너 대학 가는 거는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그냥 합격하는 게 아니라 가마를 타고 들어간다고 하니까.” 어머니의 말에 정아가 점쟁이의 말을 어찌 믿느냐고 어이없어 했다. 어머니가 정색했다.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하네. 그 양반은 아주 족집게야. 일전에 저기 북촌 당숙 돌아가시는 것도 정확하게 맞췄잖니.” 옆에서 듣고 있던 아버지가 입술을 비틀며 끼어들었다. “그냥 교통사고 조심하라고 한 것 갖고 그걸 맞췄다고 하면 안 되지. 그건 누구라도 입에 달고 사는 소리잖아. 그리고 경운기가 농수로에 구른 게 무슨 교통사고인가?” 어머니도 지지 않았다. “당연하지요. 네 발 달린 기계이니 교통사고가 아니고 뭐예요? 그리고 그냥 조심하라고 한 게 아니었잖아요. 팔월에 서쪽 길을 경계하라고 딱 집어서 알려준 건데.” 어머니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자 아버지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아버지를 제압한 어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 양반이 아주 중요하다고 특별하게 강조한 이야기가 있다. 뭐냐 하면, 말하기가 좀 거시기 하다만 자나 깨나 남자 조심하란다. 네 고운 손에 목숨이 걸린 남자가 여럿이래.”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가 즉각 반응을 보였다. “그 말은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우리 딸 없으면 아버지도 죽을 것 같으니까!” 얼굴이 붉어진 아버지를 향해 어머니가 불뚝성을 내며 언성을 높였다. “그렇게 농담으로 들을 얘기가 아니라니까!”

생각해보면 그날 어머니가 전한 점쟁이의 말은 신통하리만치 맞아떨어져 현실이 되었다. 인수와 철규의 경우가 그랬고, 아버지가 그리도 황망히 세상을 떠난 것도 따지고 보면 딸을 위하다 그리된 것이니까.

그가 정아의 볼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에는 말이지, 이런 싱그러운 젊음과 미모와 일본어 실력을 가지고 우림각에서 일한다는 게 대단히 불합리해 보여. 도무지 몸에 맞지도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그가 하체를 바짝 밀착했다. 사타구니 사이로 예견된 느낌이 밀려들자 정아는 살짝 다리에 힘을 빼 틈을 주었다.

“저도 느껴요. 사노라면 삶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수가 있잖아요.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마치 동력이 끊긴 배처럼 말이에요.”

정아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대체 무엇이 내 삶에 이처럼 형편없는 누더기를 입혀놓은 것일까, 하고. 눈을 감았다. 지난 시간들이 발걸음에 익숙한 골목의 풍경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갈래머리를 한 소녀가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고 있었다. 먼 거리를 날아온 그녀의 가방 속에는 대학입학원서가 들어있었다. 그녀의 성적은 집에서 가까운 국립대는 물론 서울의 중간 라인 정도의 학교는 갈 수 있을 만큼 괜찮은 편이었다. 소녀의 집에서는 그녀가 집에서 멀지 않는 대학을 선택했으면 했다. 집에서 가까운 한 대학에서는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부모님의 바람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외삼촌이 있는 서울로 가라는 중재안도 거부했다. 평소 자기 고집을 별로 내세우지 않던 딸이 고집을 부리자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그러면 뜻대로 하라고 마음을 열어주었다. 소녀는 망설이지 않고 비행기에 올라 이 섬의 국립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부모님, 진학담당 선생님과의 불화와 반대를 감내하며 기어이 이곳의 대학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2년 전의 기억 때문이었다.

소녀는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이 섬으로 왔다. 그때 돌아가는 비행기의 창문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며 다시 꼭 돌아올 게 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때는 그렇게 막연히 생각을 한 것인데, 막상 원서를 쓰려고 하니 그게 무슨 주술처럼 자신을 옭아맸던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가라는 아버지의 말씀이나 서울로 가 큰물에서 공부하라는 진학담당 선생님의 권유를 따랐더라면 어땠을까. 적어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꾸리고 있지 않을까. 부질없는 가정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대학진학을 다른 곳으로 했다면 적어도 인수와의 인연만은 없었을 것이다. 인수는 이곳이 고향인 데다 성적이 좋지 않아 어차피 이곳 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랬으면 인수가 칼에 찔려 졸지에 생을 마감하는 비극도, 철규가 살인자가 되어 교도소로 가는 곡절도 없었을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손으로 정아의 다리 사이를 넓히며 말했다.

“누구나 자기만의 운명 안에서 허우적거리며 사는 거지. 나 역시도 그 운명의 틀 안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를 못했어. 나는 누이보다 훨씬 가혹한 측면이 있거든. 안나푸르나 제1봉의 정상 등정을 눈앞에 두고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극심한 눈보라를 만나 사투를 벌였으니까.”

“어머, 산악인이셨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조난을 당해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대신 네팔의 산신에게 다리 하나를 내줘야 했지. 부러진 다리는 땡땡 얼어서 덜렁거렸어. 다리를 잃은 산악인에게 목숨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 그걸로 인생 종친 거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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