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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2018.07.01 21:23

오을식의 장편 연재 소설 (71) -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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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연재소설 (제71회)

바람의 기억


6. 낮달의 시간


“너도 어서 아버지 품에 손주 안겨드려야지. 나이가 들면 애기 갖기도 낳기도 어려워지는데.”

할머니가 수박을 권하며 말했다. 한 조각을 받은 영미는 하나를 집어 할머니에게 건넸다.

“아이, 짝이 있어야 시집을 가지요.”

“너무 고르는 거 아니니? 고운 때 벗어지기 전에 어서 좋은 짝 만나야 해. 넌 마음 곱겠다, 인물 좋겠다. 직장 튼튼하겠다, 그만 하면 다이아몬드 신붓감이니 관심만 두면 남자들이 줄을 설 거다. 그리고 고르고 골라 봐도 사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야."

할머니는 수박을 베어물고 참 맛나게도 오물거렸다. 영미는 직장 튼튼하다는 할머니의 말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언젠가 직장을 물었을 때 그냥 편하게 일본여행사에 근무한다고 했는데 그걸 기억한 모양이었다. 마침 아버지가 휠체어 바퀴를 씽씽 돌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이마며 콧잔등에 땀이 배 반들거렸다.

“맛있게 먹어요. 분이 건 또 있으니께."

아버지는 그 말만을 툭 던져두고는 방향을 틀어 씽하니 복도로 나갔다.

"아주 신이 나셨구나. 너만 오면 저렇게 생생하게 살아나신다. 다 네 효심 덕분이지."

할머니의 눈길이 아버지의 뒷모습을 쫓았다. 영미는 휴지를 빼와 할머니의 입과 손을 닦아주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할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늙으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니?”

“암? 아니면 치매?”

“그건 재수 없거나 귀찮은 거지 무서운 건 아니야.”

“그럼 죽음에 대한 공포?”

“그건 이미 가까이에 와 있는 친구 같은 거니까 오히려 무섭지 않지.”

영미는 할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할머니의 표정이 전보다 많이 어두워보였다.

“내가 겪어보니까, 늙어서 제일 무서운 건 외로움이야. 그건 마치 아무 것도 없는 하늘에다 밧줄을 던지는 일과 같았어. 던진 밧줄이 하늘 어딘가에 걸려서 하늘과 나를 연결해주기를 바라지만 밧줄은 매번 스르르 떨어져내려 발밑에다 똬리를 틀지. 그렇다고 포기할 수가 없어 자꾸 던져보는데... 결국 수많은 똬리에 치여 숨이 턱턱 막히는 나지막한 공포, 그게 바로 늙으면 누구나 괴롭게 겪게 되는 외로움의 실체가 아닌가 싶어.”

할머니는 이화학당 출신답게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늙으니 외로움처럼 무서운 게 없더라, 하면 될 걸 이리 저리 말을 돌려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도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그 품위가 자신에게 옮아오는 것 같아 영미는 기분이 좋았다.

영미는 두 시간 넘게 아버지와 시간을 보냈다. 손톱과 발톱을 깎아드리고 일회용 면도기로 수염도 말끔하게 밀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귀청소도 해드렸다. 허벅지를 베고 누워 귀를 맡길 때의 아버지 표정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평온함이 절절해서 덩달아 흐뭇했다.

점심을 먹고는 분이 할머니 방에서 함께 고스톱을 즐겼다. 준비해간 동전을 두 분께 나눠드리고 한 시간 쯤 지나자 늘 그랬듯 모든 동전이 할머니에게로 몰렸다. 기분이 좋아 무조건 고를 외치는 아버지는 제일 먼저 판돈을 날리고 울상을 지었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아버지 앞으로 슬쩍 동전을 밀어주고는 했다.

판이 끝나자 두 분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차를 타고 근처 중산간 도로를 달리고 싶어 했다. 드라이브를 나가면 아버지는 소떼나 말이 있는 목장지에 환호했고, 할머니는 시내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확 트인 전망에 감탄했다. 영미는 도로에 아직 잔설이 남아있는 관계로 오늘은 드라이브가 어렵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쉽게 수긍을 했는데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외부에서 요양원으로 차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이제 나가도 괜찮은 것 같다고 고집을 피웠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왠지 운전하기가 꺼림칙해서 거푸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영미는 두 분에게 홍시를 하나씩 드리고는 핸드백을 챙겨 일어섰다. 놀란 아버지가 벌써 가느냐고 물었다. 홍시를 입에 문 할머니도 의아한 표정으로 영미를 바라보았다.

“지금 안 갈 거, 화장실 다녀오려고요!”

영미는 휴게실을 지나 주로 직원들이 이용하는 복도 끝 화장실로 갔다.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걸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엄습했다. 백에서 검사 키트를 꺼내 비닐을 벗겼다. 심호흡을 한 다음 속옷을 내리고 변기에 앉았다. 엉덩이에 찬 기운이 들러붙듯 올라와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변 채취를 언제 할까 궁리하다 오줌줄기가 약해지는 말미에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괄약근을 느슨하게 풀었다. 요도를 따라 물줄기가 가파르게 내려오는 느낌이 시원하면서도 아릿했다. 줄기가 가늘어지자 영미는 얼른 괄약근을 조이고는 키트를 성기에 댔다. 다시 근육을 풀자 오줌이 쪼르르 소리를 냈다. 영미는 그렇게 한동안 앉아있었다. 키트에 두 줄이 뜨면 어떡하지? 설마 그런 일이 일을 라고.

만약 두 줄이 뜬다면 그건 경철의 흔적일 터였다. 근래 콘돔을 쓰지 않은 경우는 경철과 나가사키에서 온 아베뿐이었다. 경철과 잔 다음 날 손님인 아베는 콘돔에 대한 거부감이 워낙 강해서 그냥 하게 했었다. 그러고는 다음 날 호텔에서 나가자마자 약국으로 달려가 사후피임약을 샀던 것이다. 사후피임약은 관계 후 최대한 빨리 복용하는 게 좋지만 72시간 이내에만 복용해도 임신 가능성을 현격하게 떨어트린다고 했던가. 그러므로 그 응급피임약은 약 48시간 전의 경철과의 관계까지도 충분히 커버했을 것이라고 영미는 믿고 있었다.

마침내 키트를 들어올렸다. 부디 한 줄만 나타나기를 간절하게 바라면서. 더불어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하면서. 키트를 뿌리쳐 물기를 털어냈다. 눈에 힘을 주고 키트의 반응 판을 노려보았다. 동공이 커졌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말도 안 돼! 영미는 옹알이를 하듯 중얼거렸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마치 목에 가시라도 걸린 것처럼 몸도 마음도 불편했다. 영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가 곧바로 휴지통에 던졌다.

한 시간 쯤 더 머물다 양로원을 나섰다. 아버지는 오늘도 어김없이 울상이었다. 영미 손을 잡고 아까 물었던 것을 또 물었다. 일본에 갔다가 언제 돌아오느냐고. 영미는 처음 들은 질문처럼 뜸을 들였다가 대답하곤 했다. 보름 정도 있다가 귀국할 거라고. 아버지는 아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비행기 탈 때 미리 멀미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영미는 차에 올라 창문을 내린 다음 거푸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버지와 분이 할머니가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었다.

차가 진입로를 빠져 나와 도로로 들어설 때까지 아버지는 양로원 마당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곁에 서 있는 분이 할머니가 마치 엄마처럼 보였다. 고갯길을 돌며 바라보니 그때까지도 두 사람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제 아버지는 방으로 돌아가 벽에 걸린 달력 날짜에 동그라미를 그리고는 밑에 '영미 일본 방문'이라고 쓰기 시작할 것이다.

영미는 산간도로를 달리는 내내 가슴에 단단한 뭔가가 얹힌 것처럼 느껴졌다. 딸이 떠날까봐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버지 때문일까. 그것만은 아닐 터였다.

영미는 정아를 떠올리며 휴대폰을 들었다가 이내 내려놓았다. 곧 첫 초이스가 시작될 시간이어서였다. 임신 소식을 알리면 정아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정아의 놀란 표정이 그려졌다. 정아는 어떤 처방을 내려줄까. 성품으로 보아 쉽게 지우라는 말은 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낳아서 기르라는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여자 혼자서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게 얼마나 많은 제약과 괴로움이 따른다는 걸 뼈저리게 체험한 입장이니까.

당사자인 경철은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 경철의 황당한 표정이 그려지자 머릿속이 다시 하얘졌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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