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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2017.09.11 01:07

오을식의 장편 연재 소설 (33) -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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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밤의 꽃


정아는 은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 골목길에는 아직도 발자국에 다져진 눈이 남아있어 미끄러웠다. 모녀는 종종걸음으로 큰길로 나섰다. 모처럼 햇살이 하해서 눈이 부셨다. 기온은 별 변화가 없는데 잦아든 바람 덕분인지 제법 포근하게 느껴졌다.

버스를 타서 시청에서 내렸다. 정아는 정류장에서 가까운 두 개의 분식집 중 진열장에 각종 튀김이 가득찬 가게로 들어갔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실내를 둘러보았다. 이게 얼마만인가, 정아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입덧으로 고생할 때 왔었으니 4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가게는 그사이 안팎으로 칙칙했던 장식을 버리고 새롭게 단장을 해서 분식집이라기보다 카페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어서 아직은 빈자리가 많았다. 주방 이모들의 분주한 손놀림이나 긴장감으로 보아 곧 손님들이 몰려들 것이라 짐작되었다. 정아는 치즈돈가스 두 개를 주문한 다음 다시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아의 시선이 반대편 구석의 한 테이블에서 오래 머물렀다. 아마 저 자리였을 것이다. 같은 학과 선배들이 군인 한 명을 가운데 두고 손뼉을 치며 환호했던 곳이.

그날 빨간 명찰을 단 군인 앞에는 네 개의 커다란 우동사발에 국수가 가득 담겨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던 선배 하나가 들었던 손을 단호하게 내리며 시작! 하고 외쳤다. 군인은 신호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그릇에 코를 박았다. 국수는 그의 입으로 사정없이 빨려들었고, 그는 곧바로 다음 그릇을 끌어와 코를 박았다. 그렇게 네 그릇의 국수가 군인의 입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마지막 그릇의 국물을 들이켜고 빈 그릇을 탁자 위에 내려놓는 순간 시계를 주시하고 있던 선배가 거의 동시에 그만! 하고 소리쳤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 누군가가 군인의 손을 잡아 치켜 올리며 외쳤다. 귀신 잡는 해병의 승리! 순간, 군인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만세 자세로 환호성을 질렀고, 옆에 있던 학회장은 손으로 제 머리를 감싸며 탁자에 이마를 찍었다. 학회장은 곤혹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뭉그적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편으로 다가왔다. 시선이 일제히 정아의 테이블로 쏠렸다.

“아, 분하다! 어쩌면 좋으냐, 오늘 나 좀 도와다오.”

학회장이 뒤를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도움이요? 혹시 국수 값이 모자라기라도 하나요?”

친구가 저편 테이블 위의 국수 그릇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대꾸했다. 학회장이 말했다.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저 군인은 휴가를 나온 너희 과 선배라고.

“저 군바리가 너희들 미모에 취해서 하도 보채길래 내기에 응했는데, 쟤가 설마 곱빼기 국수 네 그릇을 30초에 국물까지 먹어치울 줄은 상상도 못했지.”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나랑 정아가 선배님들 내기 상품이었다는 건가요?”

친구가 도전적인 톤으로 따지듯 물었다. 학회장이 난처한 표정으로 우물쭈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정아는 저편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날아가던 정아의 시선이 중간에서 군인의 눈길과 마주쳤다. 외길에서 만난 두 시선이 하나처럼 이어져 잠시 불꽃을 튀기며 밀리고 당겨졌다.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는데요?”

정아는 과대표를 쳐다보며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물었다. 친구가 정아를 노려보았다. 과대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간단해. 이따 저녁에 우리랑 같이 코리아나로 가면 되는 거야.”

“누구 맘대로요?”

친구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내가 술값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낼 거니까 너희는 이 뛰어난 미모만 부담하면 되는 거야.”

“미모는 현지에서 조달하세요. 코리아나에 우리 정도 얼굴은 널렸을 테니까요.”

친구의 태도가 호락호락하지 않자 학회장이 손바닥을 비비며 사정조로 말했다.

“그러면 나도 편하지, 근데 저 해병대 군바리가 너희들이 아니면 안 된대. 좀 도와주라.”

정아는 그때까지도 코리아나가 이 섬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나이트클럽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날 친구와 함께 이 분식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오지 않았다면, 아니 내기에서 진 학회장의 부탁을 거절했다면 그래도 인수와의 인연이 가능했을까. 정아는 은지를 바라보며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음식이 나오자 정아는 은지의 그릇을 당겨와 먹기 좋은 크기로 잘게 잘라주었다. 은지가 작은 입에 고기를 넣고 오물거리며 조잘거렸다.

“아, 맛있다. 영미 이모랑 같이 먹었으면 좋았는데. 자, 엄마도!”

정아는 은지가 포크로 찍어 내미는 고기를 입으로 받았다. 달달한 맛과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이 예전 그대로였다. 정아도 은지도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정아는 먹는 내내 저편 구석에서 인수가 이편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몇 번이나 돌아보고는 했다.

“이제 동화책 사러 갈까?”

정아의 제안에 은지의 입이 금세 귀에 걸렸다.

“어제처럼 엄마가 일하러 나가면 이제는 텔레비전만 보지 말고 동화책도 꼭 읽는 거야. 책은 얼마든지 사줄 테니까.”

은지가 좋아서 폴짝거렸다.

“알았어요. 열심히 책을 읽어서 나도 엄마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될 거야.”

은지의 말에 정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는 이제 선생님이 아니고 훌륭한 선생님은 더더욱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지를 못했다.

“엄마가 일 나가고 나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문이 잘 잠겼는지 두 번 이상 살펴보고, 혹시 미친개 아저씨가 와서 문을 열라고 하면 절대로 열어주지 않는다. 그래도 돌아가지 않으면, 경찰아저씨를 부를 거예요! 하고 큰소리로 외친다.”

정아는 자신이 당부한 내용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게 기특해서 은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집을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정아는 지금 자신의 처지가 촘촘한 그물에 걸린 물고기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칠수록 더 옭아드는 그물의 세계에 꼼짝없이 제대로 걸려있다는. 그 불길한 예감은 뇌리를 맴돌며 엄청난 스트레스로 정아를 괴롭혔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은지와의 이 짧은 외출이 전혀 다른 에너지를 불러와 그러한 괴롭힘을 천천히 압도하며 누그러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벌어진 변화 덕분에 얼어붙었던 정아의 마음이 얼마간 따뜻해졌다. 움켜쥐고 있던 소중한 가치 하나를 놓아버리니 답답했던 가슴도 믿기지 않을 만큼 후련해졌다. 정아는 지금의 이 평온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래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소망했다.

분식집을 나온 정아는 정류장을 등에 두고 걸었다. 정류장 주변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잔뜩 움츠렸던 어제와는 달리 대부분 활기가 넘쳤다. 모퉁이를 돌자 자그마한 서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섬에서 헌책을 취급하는 유일한 곳이었다. 정아는 대학 시절 자주 이 가게에 들러 그날의 운을 가늠하고는 했었다. 운세를 알아보는 법은 간단했다. 서점에 들어섰을 때 카운터에 백발이 성성한 사장님이 앉아있으면 대운이고, 까만 파마머리 사모님이 지키고 있으면 그 반대 운이었다. 시간의 서리가 머리에 가득 내린 사장님은 인심이 후해서 계산을 끝내고나면 늘 당신이 읽고 감명을 받은 책 한두 권을 슬쩍 건네주고는 했었다.

오늘도 운이 좋았다. 멀리서도 눈에 익은 하얀 머리가 보였다. 정아는 은지를 이끌고 어린이 코너로 가서 마음껏 책을 뒤적거리게 했다. 사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아이가 책을 좀 거칠게 다뤄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 마음이 편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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