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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고향, 리버풀에서 만난 사람들

by 유로저널 posted Sep 0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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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4시간 가량 운전으로 갈 수 있는 잉글랜드 북서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 리버풀, 산업 혁명을 기점으로 한동안 영국 공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으나 20세기 중반부터 급속히 쇠퇴하여 불황의 터널로 들어선 도시, 그럼에도 1년 내내 전 세계 수 많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방문하는 도시, 과연 비틀즈의 고향 리버풀이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리버풀을 방문하면서 비틀즈의 흔적과 또 그 흔적을 찾아온 사람들, 그리고 이 같은 광경을 오랫동안 목격했던 사람들을 여럿 만나볼 수 있었다. 비틀즈의 흔적을 찾아 멀리 일본에서 온 Takayoshi Shimizu, 비틀즈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는 Linda Brown, 그리고  비틀즈의 실제 활동 시기부터 그들이 떠난 지금까지 리버풀을 지키고 있는 James McDuff가 바로 그들이다.

* 비틀즈가 있기에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는 이들은 필자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는 마음껏 사용해도 좋으나 사진 촬영만은 정중히 사양하였다. 대신 이들은 비틀즈의 흔적들을 자신들의 이야기와 함께 담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어쩔 수 없이 이번 인터뷰에는 Interviewee가 아닌 Interviewer가 비틀즈의 흔적들과 함께 등장하는 사진들로 함께 한다.

리버풀에 도착해서 얻은 첫 느낌은 황량함, 우울함이었다. 거리에 사람들도 많지 않고, 날씨는 전형적인 영국 날씨답게 흐리거나 비였다. 초라하게까지 느껴지는 리버풀의 동네들, 과연 이 곳에서 어떻게 전 세계를 뒤흔든 비틀즈가 탄생하게 된 것일까?

시내 중심가로 이동해보니 황량한 동네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번화가에 초현대식 건물들도 자리하고 있었고, 사람들 물결이 마치 런던 시내 한복판인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리버풀 최고의 명소는 누가 뭐래도 Albert Dock, 배들이 정박하던 그곳이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으며, 관광객을 위한 시설들, 그리고 무엇보다 비틀즈 박물관인 Beatles Story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10파운드가 넘는 입장료가 다소 부담스럽지만 그럼에도 리버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비틀즈 박물관인 만큼, 리버풀을 방문한다면 꼭 들러볼 것. 박물관은 지하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물 외부에는 ‘Yellow Submarine’을 상징하듯 커다란 노란 잠수함 장식물이 부착되어 있었다. 박물관에는 비틀즈의 각종 기록들, 그들의 실제 무대 의상, 존 레논이 연주했던 피아노 등 비틀즈의 살아있는 흔적들과, 초창기 비틀즈의 공연 장소였던 카번 클럽(Cavern Club)을 재현시킨 모형 등 갖가지 볼거리들로 가득했다. 오디오 음성 해설로 가이드를 진행하며, 꼼꼼히 감상하다 보면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비틀즈 박물관에서 일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주말이라 언론/홍보 담당자는 만나볼 수 없었다) 중년 여성 Linda Brown은 비틀즈의 전성기 시절 아주 어린 꼬마였다고 한다. 리버풀에서 태어나 리버풀에서 자란 그녀는 비틀즈 기념품 가게를 비롯, 비틀즈 관련 업체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왔다고 한다. 그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봤다.

유로저널: 비틀즈 박물관에서는 어떻게 일을 하게 되었는지, 또 일하면서 느끼는 점은?

Linda Brown: 사실 비틀즈가 한참 주목을 받기 시작할 때 저는 아주 어린 나이였기에 그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들의 노래들을 흥얼거렸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음악과 존재를 본격적으로 인식했을 무렵에는 이미 그들은 리버풀을 떠나 미국을 주 활동 무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예전 리버풀에서는 대부분 공장 아니면 지역 식당, 가게에서 일자리를 찾는 게 대부분이었고, 저 역시 평범하게 지역 가게들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비틀즈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날마다 비틀즈 때문에 가게를 찾는 전 세계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틀즈와 관련된 일에 보다 애착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곳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었고, 결국 비틀즈와 함께 늙어가고 있네요. (웃음) 사실, 저 뿐만이 아니라 많은 리버풀 출신들이 비틀즈와 관련된 일로 직업을 얻게 되었기에 비틀즈에게 감사하죠. 일하면서 느끼는 것은, 날마다 이곳을 처음으로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비틀즈에 대해 열광하는 것을 목격하다 보면 마치 비틀즈가 아직도 실제로 살아있고, 활동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비틀즈 박물관을 나와서 근처 가게들을 구경하던 중 비틀즈 티셔츠를 입은 젊은 동양인을 발견하였다. 사실, 리버풀에서는 의외로 동양인이나 흑인 등 유색인종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비틀즈의 매니아인 일본인으로, 비틀즈 축제 때문에 리버풀을 방문 중이었다.

유로저널: 비틀즈의 열혈 팬이신 것 같은데, 리버풀에는 어떻게 오셨는지, 또 비틀즈와는 어떤 인연을 갖고 있는지요?

Takayoshi Shimizu: 저는 일본에서 왔고,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되는 비틀즈 주간 페스티벌(Beatles Week Festival)을 보러 리버풀에 왔습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비틀즈 Cover Band(비틀즈 노래를 레퍼토리로 하는 밴드)들의 공연과 비틀즈 전시회 등, 진정 비틀즈 매니아들을 위한 행사입니다. 사실, 제가 비틀즈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이미 비틀즈가 해체된지 한참이 지난 후였습니다. 제 또래들 중에서는 저만큼 비틀즈에 대해 잘 알고, 비틀즈를 좋아하는 이들이 별로 없을 것 같네요. 이상하게도 저는 제 또래가 듣는 최신 음악보다 어른들이 듣던 비틀즈의 노래들이 더 좋았습니다. 이미 일본에는 비틀즈 매니아들과 또 좋은 자료들이 많이 있었고, 그것들을 통해 저 역시 비틀즈 매니아가 된 것이죠. 리버풀에는 지난 해 페스티벌을 비롯, 이번이 네 번째 방문입니다.  리버풀에만 오면 마치 비틀즈가 활동했던 그 시대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처음 왔을 때보다 모든 게 훨씬 비싸졌네요. (웃음)

리버풀에 오면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바로 페니 레인(Penny Lane)이었다. 비틀즈의 노래 ‘Penny Lane’은 바로 리버풀의 평범한 거리 페니 레인을 묘사하고 있는 곡. 비틀즈 박물관이 위치한 Albert Dock에서 운전으로 10분 가량 걸리는 가까운 곳에 있었고, 노래 속에 등장하는 가게들은 대부분 없어졌건만, 페니 레인 표지판 앞에 서니 까닭 모를 감동이 밀려왔다. 사실, 평범한 동네에 평범한 도로일 뿐인데…

페니 레인 표지판 바로 옆에 페니 레인 펍이 있어서 들어가 봤다. 페니 레인을 찾아온 비틀즈 관광객들을 위한 장소인 듯, 가게 안은 온통 비틀즈의 사진들과 액자들이 가득했다. 맥주를 한 잔 시켜서 마시면서 가게를 구경하고 있는데, 한 노인이 혼자 맥주를 마시다가 말을 걸어왔다. 페니 레인 인근 동네에서 태어나 무려 62년 동안 이 지역에 거주해온, 말 그대로 페니 레인의 터줏대감이었던 James McDuff였다. 얘기를 나눠보니 James는 비틀즈의 산증인이었고, 간단히 나누는 얘기를 기사로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유로저널: 실제 비틀즈의 활동을 목격한 산증인이신데, 당시 비틀즈가 처음 주목을 받던 시기의 분위기는 어땠는지요?

James McDuff(이하James): 비틀즈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던 시기는 1963년 말이었습니다. 동네 클럽에서 연주하는 평범한 밴드가 어느 날부터 열광적인 인기를 얻는데, 처음에 리버풀 사람들은 이에 대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음악이 영국 전역으로 알려지고 인기를 얻으니까 덩달아 리버풀 사람들도 비틀즈를 다시 보게 되더군요. 나중에는 비틀즈 때문에 리버풀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게 되기에 이르렀지요.

유로저널: 비틀즈의 결성에 대해 들려주실 얘기가 있으신가요?

James: 원래 비틀즈는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가 주축이 된 ‘쿼리맨(The Quarrymen)’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다가 폴이 조지 해리슨을 만나 조지가 합류했고, 그런데 원래 드럼은 피트 베스트가 맡았는데 팀에서 그의 드럼 실력을 별로 만족해하지 않았다더군요. 결국 비틀즈가 공식 출범하기 전에 피트는 팀에서 떠나고, 링고 스타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운 좋게 비틀즈가 된 거죠. 그런데, 사실 나중에 팀 멤버들 간에 사이가 나빠졌을 때, 그 중재 역할을 한 게 링고 스타였습니다. 다들 개성이 강하고, 내성적이었던 데 비해 링고는 성격도 활발하고 대인 관계가 좋았거든요. 후반기 앨범 녹음이나 공연 활동은 링고가 마치 리더처럼 팀원들 간의 관계를 이끌었다고 하더군요.

유로저널: 그렇다면 비틀즈의 해체에 대해서는?

James: 원래 영국에서부터 비틀즈 팬들은 주로 존 아니면 폴의 팬들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비틀즈가 한참 미국에서 인기를 얻을 무렵에는 그 현상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미국의 화려한 스타 문화에 비틀즈도 상당한 혼란을 겪었겠죠. 원래 폴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잘 만들었고, 존은 독특한 사상을 갖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존이 자신과 잘 맞는 오노 요꼬를 만나면서 팀에서 마음이 떠났고, 음악적으로 더 성공하길 원했던 폴이 솔로 앨범을 구상하면서 비틀즈의 해체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영국인들은 존이 미국에서 반전 운동가처럼 활동하는 모습에 상당히 의아해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결국 대중 가수라기보다는 일종의 정신(spirit)을 추구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사망했을 때 영국인들이 겪은 충격과 슬픔은 엄청난 것이었고, 영국 출신 아티스트들의 미국 진출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까지 갖게 했습니다. 어쨌든, 비틀즈가 해체된지는 벌서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리버풀 사람들은 여전히 비틀즈로 인해 리버풀 출신임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영국인들도 비틀즈로 인해 영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현재 생존하고 있는 비틀즈 멤버는 폴 메카트니와 링고 스타, 두 사람 뿐이며 둘 다 주름이 무성한 노인이 되어 버렸다. 언젠가 실제로 타임머신이 만들어진다면 꼭 한번 이들이 처음 활동하기 시작한 그 시대의 리버풀을 방문해보고 싶다. 항구도시 리버풀에서 태어난 네 명의 젊은이들이 음악으로 전 세계를 뒤흔든 그 역사적인 순간들이 아직도 그곳에는 현재 진행형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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