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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드하우스컬리지 샤론김 원장님을 뵙고..

by 유로저널 posted Jun 0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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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Sharon Kim, Principal of Tudor House College.

한인 사회에서 유명한 선생님이라는 소문을 듣고 샤론 김 원장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청했다.
- 일시: 2006년 3월 15일 오전 11시
- 장소: 튜더 하우스 컬리지

학원 입구에 써 놓으신 것을 보니까 한국에서 사셨던데요, 언제 쯤이고 무슨 일들을 하셨었나요.

1995년 부터 1997년 까지 입니다. 홍익대학교에서 전임강사가 아닌 정교수로 영어를 가르쳤었습니다.

그 당시에 지금의 이 학원을 오픈할 사업구상을 하고 계셨었는지요.

한국을 위한 일을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학원이라곤 구체적으로 생각 안했었습니다. 그래서 IMF가 1997년에 강타했을 때 영국에 나와 한국인들들을 위한 컨설팅 펌을 열었었습니다. '코리안 인포메이션 컨설턴시'라고. 그러나 그 역시 한국 경제의 영향을 받아 많은 한국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갔고 사업도 그 수요가 줄어들어 자연스레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실 두 번의 학원 경영 경험을 거쳐 오늘의 튜더 하우스 컬리지를 열게 되었습니다.

원래가 경영학 이론에서도 파트너 쉽은 두마리의 사자가 한 우리에 있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합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무조건 동업을 해서 그 성공을 보는 대표적으로 민족성이 강한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점이 불편했을까요.

결국 다른 방향성 때문입니다. 파트너쉽을 할 때 두 사람이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으면 동업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요.

감정적인 부분 때문이 아닐까요. 일 자체에 몰두하기 보다는 전 제 학원에 100% 감정적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보다 이 학원에 쏟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전 첫째가 아이들을 선도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이익은 수반된다고 봅니다. 5세부터16세 까지의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단지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150명 아이 하나 하나를 제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숙제를 해오는지 학교엔 무슨 문제가 없는지 우울해 보이면 상담하고  학교 선생님에게 편지도 제가 직접 씁니다. 13명의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한 분을 제외하곤 모두 영국인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학교수업에 바로 적용 될 수 있는 교육에 도움을 주자는 것이 우리가 믿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 따라가지 못할까봐 염려하시는 학부모님들은 없나요.
학교에서 진행되는 수업과 영국식 형태의 교육제도에 재스타일링 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학원 교육입니다.
일테면 75%는 선생님이 지도 해줘도 25%는 자발적으로 생각해서 학습하게 만드는 형태죠. 자꾸 스스로 생각하게 해서 문장을 만들어 보도록 하고 다시 고쳐주고 또 반복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영국식은 아닙니다. 한국식과 영국식 교육제도를 절충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영국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80%이 한국인 학생인 이 학원에 보내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그들은 또 영국에 없는 한국식인 좀 더 긴밀한 학생들과의 관계를 좋아합니다.
세 번 정도 아이와 상담 후에도 늦거나 하면 부모님과 상담합니다.
아이가 요즘 어떤 상태에 있는지 온전히 믿고 맡길 수 있는 형태의 교육기관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 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떨 때 가장 보람을 느끼시나요.
아이들의 공부가 점점 향상 될 때, 고맙습니다 라고 말 할 때 정말 가슴이 찡합니다. 지난 번엔 장미 꽃 한 송이를 받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것은 한국식의 정서인데요. 서울 어디서 사셨나요.
가락시장 근처에서 시부모님들과 함께 살았고 전 서양인과 아무런 접촉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영국여자라고 믿겨지지 않는 군요.

모두들 전생에 한국인이 었나보다라고 해요.(웃음)

혈통적으로 브리티쉬이신가요. 미인이시고 독일인 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어머니는 독일계고 아버진 아이리쉬입니다.
아무리 한국을 이해하셔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으실거라 짐작 됩니다.한국 남자와 18년을 살았지만 말은 거창하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때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동감입니다. 하지만 대기업과의 거래시엔 아무도 그렇진 않겠죠. 법에 의한 동의서일테니까요.  
사실..저의 아버지가 한국의 모 대기업과 거래한 적이 있는데 계약서 서명후에 아무런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이 있어요. 그대로 파기 되었죠.
그랬군요. 있을 수 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네요.
요즘에 그렇게 경영하면 아무도 거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그립고 좋은 한국의 기억은 갖고 계신지요.
존경입니다. 한국은 교수라는 지위를 상당히 명예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시댁 식구들을 사랑하는데 함께 살 때 나를 위해주고 존경해준 것들은 잊을 수 없습니다.

전 오히려 그것이 나를 더 든든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느꼈고 아직도 그리운 점입니다. 장손인 남편댁에 며느리로서 다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죠.

햇살이 가득 든 학원안에 앉아서 조용한 음성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모성애로 가득한 경영을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양질의 교육에 기여하는 그녀의 경험 상, 동양여자들은 서양여자더러 너무 이기적이라 하고 '한국여자들은 다소 강하게 자신의 고집만 주장한다'고 표현한 그녀에게 한국여자도 경쟁자보다는 친구의 이미지로 다가올 수 있는 날이 있기를 바랬다.


                  <영국=유로저널>
                  양연희 영국 지사장
                yy_bright@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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