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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이 ‘아줌마’를 통해 본 한국

by 유로저널 posted Jan 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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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기고
문화칼럼


결혼이주여성이 ‘아줌마’를 통해 본 한국


나는 강연 할 때마다 ‘아줌마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내가 본 한국에 대한 인상은 남편 다음으로 여러 아줌마들과의 만남으로 형성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만난 첫 아줌마는 가족에 대한 배려, 문화적 충격, 그리고 예의를 가르쳐준 우리 시어머니다. 어머니는 반대한 결혼이면서도, 인사하러 온 나를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맞아주셨다. 식구들과 처음으로 함께한 첫 식사. 내가 매운 음식 못 먹는 걸 어떻게 아셨는지, 내 자리 앞에만 계란 프라이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이 내 자리인 걸 어떻게 알았냐고? 유일하게 숟가락 옆에 포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날은, 내가 고기 잘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커다란 솥을 쇠고기로 채우고 간장에 조리기 시작했다. 정말 맛있었다. 덕분에 거의 2주 동안 하루 세끼 쇠고기조림을 정말 원 없이 먹었다.

한국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시어머니는 바구니를 들고 나를 불렀다. 따라오라는 손짓이었다. 바구니를 들었으니 당연히 시장에 간다고 생각했다. 시장 가기엔 바구니가 너무 작고, 샴푸와 비누도 들어 있어서 참 의외였다. 그래도 바구니니까, 분명 시장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착한 곳은 한 허름한 건물 앞이었다. 가운데 이상한 작은 창문이 열리고, 손만 나와서 돈을 받고, 다시 닫고. 그리고 옆쪽 커튼이 열렸다. 속으로 ‘아아아아악!’ 했다. 목욕탕이었다. 뜨겁고, 때 미는 건 아프고, 그 모든 것은 둘째 치고, 남들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 행위는 나에게 아주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다. 덕분에 이후 몇 년간은 목욕탕 가는 날이면 꾀병을 부리곤 했다.

우리 시어머니는 아침과 저녁에 하는 ‘의식(?)’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한 뒤 30분 동안 거울 앞에서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두드리는 것이다. 그 의식은 ‘기초화장’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나는 친정엄마가 기초화장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색조 화장도 안 하신다. 나 또한 필리핀에 있을 때, 화장을 안 했다. 하지만 시어머님은 달랐다. 아침에 기초화장과 색조화장을 한다. 그리고 저녁 때 씻고 또 다시 기초화장을 하신다. 어느 날 외출할 준비를 하던 중 나는 다른 날처럼 색조화장을 안 하고 집을 나섰다. 시어머니는 나를 불러 ‘화장해라’라고 한 뒤 설명을 덧붙이셨다, ‘사람 만날 때, 화장하고 나가는 것은 예의이다. 화장을 하는 건 만날 상대방을 위해 나름 신경을 썼고, 준비했다는 뜻이다.’ 화장에 그런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지 그 때 알았다.

집에서 밥을 잘 먹지 못 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나를 데리고 나가서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 다녔다. 그때 한 식당 아줌마가 나를 보자마자, ‘어머! 외국인인가 봐’라고 하셨다. 나는 수줍게 인사하고는 더듬거리는 말투로 몇 마디를 나누었다. 식당 아줌마는 흠칫 놀라면서 ‘한국말을 잘 한다’고 나를 계속 칭찬했다. 그리고 그 뒤로 원래 나오지도 않던 반찬이 나오기 시작했다. 많이 먹으라고, 한국말 배워서 고맙다고, 이것은 한국의 ‘정’이라고 했다. 기분이 좋았다. “한국의 ‘정’은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혼자서도 버스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내 옆에 앉아 나를 쭉 지켜보시더니 큰 목소리로 ‘어.디.서. 왔.어.요?!’라고 물었다. 필리핀에서 왔다고 하니, 당신도 필리핀에 가봤다며 그곳 사람들은 불쌍하고 가난해서 도둑이 많다는 말을 했다. ‘한국 사람이랑 결혼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니, 통일교냐, 중매냐, 나이 차이는 얼마냐, 심지어 남편 월급까지도 물어봤다. 당황했다. 그제서야 필리핀에 대한 편견, 국제결혼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생각과 편견을 알게 되었다.

이주민으로서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고민하던 중 목욕탕에서 또 다른 아줌마를 만났다. 목욕탕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목욕탕에 다니기 때문에, 나도 왠지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다니기 시작하던 차였다. 목욕을 하던 중 옆에 있던 아줌마가 내 등을 밀어준다고 했다. 밀고 난 후 때밀이 수건을 주면서 자신의 등도 밀어달라는 말을 했다. 당연히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줌마의 등을 보니, 내 등보다 ‘면적’이 2배나 넓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즐겁게, 팔뚝 살이나 빼자’며 이내 생각을 바꾼 뒤 아줌마의 등을 밀어드렸다. 목욕이 끝난 뒤 아줌마는 나를 불러 집에서 가져온 매실차를 같이 마시자고 했다.

그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유하자면, 목욕탕은 한국이고, 아줌마는 한국정부나 한국인이고, 나는 이주민이다. 목욕탕처럼 한국은 처음엔 두렵고 어색했던 곳이지만, 아줌마와 함께 서로 등을 밀어주듯이 누군가 손을 내밀면 그 손을 맞잡고, 낯선 목욕문화에 익숙해져가듯이 이들처럼 살기 위해 나는 두 배 더 노력하고,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한국이란걸.


<이자스민 결혼이민자·물방울나눔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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