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실용외교'

by 유로저널 posted Jul 2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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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실용외교'



  우리 외교사를 들먹일 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서희의 담판 외교와 광해군의 중립 외교다.

거란의 1차 침입의 의도를 간파하여 '형제의 의'라는 명분을 내어주면서도 강동 6주를 획득한 서희는 명분보다 실리가 더 중요한 외교 정책임을 보여준다.

또 강홍립으로 하여금 거짓 투항을 하도록 한 광해군은 명분과 실리의 그 중간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외교의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반해 선조의 고집불통식 '사대외교'는 결국 삼전도에서의 치욕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실용외교'란 단어는 말 그대로만 보자면 이런 맥락에 잘 들어맞는다고

하겠다.

  그러나 지난 6개월 간의 우리 외교는 실용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대북정책은 '비핵화'라는 명분에 사로잡혀 대화 자체가 없어졌다.

미국과는 겉으로는 FTA 타결에 치중할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상대적으로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대일관계 역시 따지고 보면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겠다'며 먼저 두 손 들고 항복한 모습이다.

거기다 동북아시아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중국에 대한 전략적 차원의 대응은 찾아볼 수 없다.

안타까운 건 러시아와의 자원외교는 단기간에 드러나는 성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는 속빈강정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외교가 변화하는 세계적 조류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시대의 이분법적 세계가 소멸한지 20여 년이 훌쩍 넘었다. 냉전시대에는 미국이라는 한 축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다른 나라와의 관계는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의 역학 관계는 미국의 절대적인 헤게모니 속에 다자간, 다분야 관계로 전환된 지 오래다.

따라서 더 이상 대미전문가만 양성하면 끝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유엔에 등록된 국가의 숫자만큼 각국에 관련된 전문가가 필요하고, 동시에 문화, 교육, 경제, 국방 등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양성했어야 했다.

문제는 이런 전문가의 양성이 한두 해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요, 각국간의 관계완화가 투자 몇 번과 지원 몇 번
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ARF의장 성명 파동에서 이런 특성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북한이 잠시나마 '10.4공동성명 지지'를 의장성명에 싫을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이 해외원조를 활발히 해서
가 아니다.

참석한 각국과 긴밀한 '대화'뿐만 아니라, 과거 제3세계 회의를 통해 동남아시아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행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미국의 영향력만 의지한 채 남북 당사자의 문제임에 분명한 '금강산 관광 피살 진상규명'에
대한 지지를 촉구했다.

결국 외교관례를 어기는 무례를 범해서까지 의장성명에서 '10.4 공동성명 지지'를 삭제하는데 주력했고,
세계의 비웃음을 샀다.

전략도 전술도 없고 남의 힘에 빌붙어 독불장군 행세만 한 격이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미국은 아무 대가 없이 순수하게 우리편이 되어줄 것인가?

이에 대한 의문은 이번 '리앙쿠르 섬' 공식 표기에서 잘 드러난다.

선언적으로만 독도문제를 외친 우리 정부의 기대와 달리 미국은 독도에 대해 관여하지 않겠다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게 만들었다.

실질적으로 독도가 일본가 우리나라의 분쟁지역임을 인정한 셈이다.

말로만 독도를 외쳤을 뿐, 이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

역대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때 과연 어떤 대화들을 나눴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두 사람 간의 친분을 확인한 것이상 얻어 온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외교에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우리는 늘 우리의 지정학적 특징을 들먹인다.

미, 러, 중, 일이라는 4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대국의 입김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이다.

그렇게 따지면 사방이 적국으로 둘러쌓인 이스라엘의 외교는 우리에 비해 행복한 편인 셈이다.

그러나 운명론으로 치부하기엔 현재의 상황은 절실하다.

우리가 헛소리로만 여겼던 북한의 '통미봉남'은 10여 년의 노력의 성과가 이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역시 북한과만 대화하려 하고 있다.

어쩌면 북한이 4강 외교를 우리보다 더 견실히 해온 셈이다.

  외교는 순수 공공재의 일종이다.

즉 경제적인 방법으로 한계비용이 얼마인지, 투자 대비 수익률이 얼마인지 알 수 있는 영역의 분야가 아니다.

즉 이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뿐더러,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시궁창 속에라도 발을 담그고, 기다리며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대표적인 분야가 외교이다.

아무리 '실용정부'라 할 지라도 외교 분야만큼은 조급증을 버리고 10년 뒤를 대비하기를 바란다.

< 관련 기사 5 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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