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끝자락에서 법정 스님을 보내며.

by eknews posted Mar 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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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끝자락에서 법정 스님을 보내며.



  세상에서 가장 큰 가방은 삶이라는 가방이다. 그 속에 안 들어가는 것이 없다. 고로 세속의 평범한 삶에 성인이 있다. 다시 말해 성속(聖俗)은 교차한다.
얼마 전 '행복한 울릉인'이라는 영화가 상영됐다. 울릉도에 74세의 상호할배가 있는데 지적 장애로 태어난 이 '바보 할배'는 늘 행복하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으면서 이발기계의 진동이 간지럽다고 목을 움츠리며 헤헤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상호할배가 다니는 교회의 한 사람은 "이상호 집사님은 일하지 않고 공짜밥을 먹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체육대회 날, 신나는 노래가 확성기를 통해서 흐르고 할배는 신이 나서 춤 아닌 춤으로 몸을 '진지하게' 우쭐거린다. 표정은 여전히 하하 헤헤 해맑다. "(상호할배에게는)지금도 누구를 사랑하고 싶어하고 결혼하고 싶어하는 이런 게 있습니다." 할배는 메달을 목에 걸고 "(달리기를)두이 해도 1등, 서이 해도 1등, 혼자 해도 1등"이라며 마냥 즐거워한다. 울릉도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할배는 삶의 원초적 행복을 한껏 보여준다. 순수, 삶의 여유, 사람 냄새…. 그도 바보 할배의 탈을 쓴 성자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라는 사람이 살았었다. "1세기쯤 후에 사람들이 야생의 사과를 따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두려운 일이다." 그는 둘레 3㎞에 불과한 월든 호숫가에 단돈 28달러로 3개월 동안 오두막 집을 직접 지어 2년 2개월 2일을 살았다. 깊이 있게 살면서 인생의 정수를 모두 뽑아내기 위해, 삶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100까지 헤아리지 말고 하나 둘 셋까지만 헤아리자"라고 했다. 그의 오두막에는 단 하나의 침대와 세 개의 의자가 있었다. 하나는 그가 앉고 다른 하나는 음식을 올리고 또 하나는 새들이 날아와 앉는 의자였다. "자연은 음악이다"라고 한 그의 말은 음악 그 자체이다. 몹시 추운 겨울 날, 숲속에서 나무 그루터기의 나이테를 세다가, 그 시(詩)와 음악을 읽다가 걸린 독감으로 그는 죽었다. 그는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고 했다.
  지난 11일 열반에 든 법정 스님이 번역한 '화엄경'이 책꽂이에서 잘 찾아지지 않는다. 그냥 두자. 화엄경은 '이 세상은 원래 그대로 온전하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걸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TV와 사진을 통해서 보니 대나무 평상에 올려져 다비식장으로 향하는 스님의 법구는 갈색 가사로 덮여져 있었으며 스님의 머리와 모은 손, 발의 굴곡이 그대로 보였다.

  만천하의 수많은 눈 앞에 확연히 드러난 저 간소한 진리를 우리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법정 스님은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富)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하다"는 말을 남겼다. 고요한 밤의 적요, 빈 방, 빈 마음, 무소유, 간소하게 살라…. 얇은 가사 한 장으로 덮여진 큰 진리를 우리는 금방 보았던 것이다.
저것은 스님의 진리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진리일 것이다. 그 속에 안 들어가는 것이 없는 우리 삶에서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화엄경이 설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다.'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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