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02일자 겐셔와 백범, 그리고 '자주'

by 유로저널 posted Aug 3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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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역사상 최장수 외무 장관이었던 한스 디트리히 겐셔는 통일의 주역이다. 무려 18년 간 재임했던 겐셔는 1995년 출간된 자서전 ‘회고’에서 재임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서독이 통일을 달성하려는 순간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독일 통일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했다.
소련은 통일 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미국은 당연히 나토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겐셔는 미국과 소련을 오가며 통일 독일이 나토에 잔류하되 구 동독 지역에는 나토군을 주둔시키지 않는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실리외교가 지론이었던 겐셔는 미국을 잘 알면서도 치우치지 않았고, 소련을 적대시하지 않으면서 포용했다.

  시대는 다르지만 겐셔처럼 미국과 소련의 첨예한 대립을 뼈저리게 느꼈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치지도자는 아마 백범 김구 선생이었을 것이다. 백범은 해방 후 남북통일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평양까지 달려가 김일성과 회담했지만 끝내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당시 힘겨루기를 시작하던 미소 양국은 한반도에서 통일 정부 수립을 찬성할 리 없었다. 미소 냉전의 양극체제에서 남북한은 대리인이었다. 백범이 자주와 민족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겨우 해방된 한반도가 미국과 소련의 야심과 전략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은 없었다.
  이후 백범은 역대 정부에서 의식적으로 외면 당해왔다.
백범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정통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변변한 기념식조차 없었다. 이처럼 홀대를 받아온 백범은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상당한 각광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2003년 4월 13일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에 참석, 임시정부와 백범의 법통과 정신의 계승을 밝혔다. 노 대통령이 백범을 내세운 이유는 ‘자주’라는 개념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노 대통령은 자신과 코드가 맞는 백범을 실패한 정치지도자로 규정했다. 노 대통령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과거에는 백범이었으나 정치적으로 성공을 못해 링컨으로 바꿨다”고 말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정치적 성공’이라는 뜻은 아마 집권을 의미했을 것이다. 집권하지 못한 백범을 닮고 싫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지도자로 성공한 노 대통령과 실패한 백범의 ‘자주’는 같은 의미일까. 노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나라의 주권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자주’를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이 말 한마디에 국론은 분열되고 너도나도 ‘안보 논쟁’에 휘말려들었다. 현재 노 대통령은 아마 과거 탄핵 사태와 마찬가지로 자주를 내세워 자신의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의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미국에 사진이나 찍으려 가지는 않겠다”고 말해왔지만, 정작 미국을 방문해선 “한국전쟁 때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지세력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도 수용했다. 이처럼 노 대통령의 자주는 통치수단 또는 정권 유지 수단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백범의 자주는 신념과 원칙이었다.
특히 백범은 민족을 얘기하면서도 평등호조(平等互助)라는 말을 병행했다. 평등호조는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자주와 동맹을 뜻한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라는 편가름에 두 동강났다. 최근 들어 논란이 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는 이런 갈등과 대립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된 것은 서독의 경제력이었다.
겐셔가 외무장관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서독이 경제강국이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경제는 추진력을 잃어버렸고, 국론은 갈래갈래 찢어졌다.
민족의 자주 독립을 나의 소원이라고 외쳤던 백범이 미국을 거론하면서 ‘평등호조’를 주창한 이유를 곰 새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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