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기 위해 자살하는 것은 가장 큰 무책임

by 한인신문 posted Oct 2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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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경기 침체의 여파가 가시화 되면서 우리 사회 곳곳이 신음하고 있다. 특히, 세계 신용 경색과 금융 위기로 인한 피해가 에상보다 훨씬 심각한 모양이다. 오늘도 한국의 대표적인 금융업체의 한 지점장이 주식 폭락에 따라 투자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죄책감에 자살을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가한 것도 아니고, 고의적으로 무책임한 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 다른 이들에게 발생한 피해, 더 정확히는 금전적 손실이 자신의 책임이라 여겼기에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선택한 자살은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사안이다.

탤런트 고(故) 안재환의 자살을 계기로 사회 전반에 드리워진 자살의 그림자가 경기 침체라는 복병을 만나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 같아 우려가 된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자살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건만, 현 상황은 말 그대로 IMF때보다 더한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그로 인한 후유증이 자살이라는 잘못된 결과로 도출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 같다. 특히, 금융 위기로 인해 금융권에 종사하는 금융업계 사람들, 금융 상품에 투자한 사람들이 자칫 신중하지 못한 선택을 유행처럼 따라 할까봐 심히 우려가 된다.

현 사태에 대해 금융권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즉 도덕적 해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금융권 내부적으로도 극심한 고민과 고통에 시달리면서, 금융권 종사자들, 특히 책임자의 자리에 있는 이들의 부담과 고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 같다. 한창 우리 사회에서 투기성 금융 상품들이 최고의 재테크 수단으로 급부상하면서, 금융업계가 많은 이들로 하여금 투자를 종용했던 만큼, 금융권 책임자들의 죄책감은 상당할 것이다.

물론, 이는 말 그대로 양심적이고 마음 착한, 그리고 한편으로는 마음 약한 이들에 국한된 것이겠지만, 이렇게 한 명, 두 명, 금융권 책임자들이 투자자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성으로 자살을 선택할 경우, 자칫하다간 대부분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금융권 책임자들의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고, 나아가 사회 보편적으로 자살이 마치 책임감을 실천하는 수단처럼 여겨지는 최악의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자꾸 옆에서 들려오고, 보여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의식이 변화된다.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어디 지점장이 책임감과 죄책감에 자살했다는 소식에, 역시 같은 고민과 고통으로 힘들던 차, 자신도 모르게 ‘그럼 나도…’하는 심리적 압박감이나 충동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투자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 어려운 형편에서, 자신의 전 재산과 다름없는 액수를, 또는 대출까지 받아서 각종 금융 상품에 투자한 이들로서는 정말 속상하고 답답할 것이다. 안정된 수입과 사회적 위치를 확보한 이들이야 그저 몇 푼 금전적 손실에서 끝나겠지만, 규칙적인 수입이 없는 대학생들이나, 신혼 자금으로, 또는 노후 자금으로 금융 상품에 투자한 이들로서는 인생 전반에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그렇다고 그에 대한 책임감이나 자책감으로 그릇된 선택을 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곧 금융과 관련된 사안들 말고도 사회 전반에서 어려운 상황들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저마다의 위치에서 책임감과 죄책감을 자극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날 것이다. 책임감으로 인한 비난을 받고, 죄책감으로 인한 고통을 겪을 일들이 비록 그 정도는 다를 지언정,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할 우리 모두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자살이라는 선택을 통해 책임감을 덜고, 죄책감을 해소하면 어떨까 하는 위험한 유혹에 노출될 것이다. 그러나,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자살은 책임감의 실천이 아니라 가장 큰 무책임이라는 것을.

어려운 시기일 수록 오히려 더욱 긍정의 효과를 기대하면서,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주고, 그래서 이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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