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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감동의 사랑이야기 (독일 손병원님 기고)

by 편집부 posted Jun 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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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감동의 사랑이야기 



월남전이 한창이던 시절 월남에서 부상당하여 돌아온 군인들을 위한 대대적인 위문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공연의 감독은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팝 호프 ( Bob Hope)를 초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바쁘고 많은 선약이 있어 정중히 거절을 했다. 


그러나 그가 없는 공연은 의미가 줄어든다고 여긴 감독은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들을 위로해 주는 공연이니 만큼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간곡히 부탁을 했다.


감독의 끈질긴 요청에 "그러면 제가 약 5분 정도만 얼굴을 보이고 내려와도 괜찮겠습니까" 그렇게라도 해주면 고맙겠다고 해서 밥 호프의 출연이 이뤄졌다.


드디어 공연 당일 그는 재차 5분 공연을 약속하고 무대에 올라갔다.


그의 재치 있고 유익한 우스개에 많은 이들이 웃고 즐거워했다.


그런데 밥 호프는 5분이 지나도 끝내지 않고 거의 40 여분 동안 공연을 하고 내려왔는데 그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었다.


공연 감독이 어리둥절하여 "당신은 지금 울고 게십니까" 밥 호프는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 앞줄에 앉아있는 두 부상병 때문입니다" 감독이 두 부상병에게 다가가보니 한 사람은 오른팔을 잃어버렸고 그 옆의 군인은 왼팔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오른팔이 없는 군인은 왼팔을,왼팔이 없는 군인은 오른팔을 사용해서 두 사람이 함께 박수를 쳤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보며 밥 호프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저 두 사람은 나에게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서로 힘을 합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나는 참된 기쁨을 배웠습니다. 기쁨은 함께하고 나누면 더 큰 기쁨입니다"  




"여보,오늘 저녁에는 누룽지를 끓이지" 남편의 말을 들으며 문득 오랜 옛일이 회상되었다.


집이 시골인지라 저는 고등학교 시절 읍내에서 자취를 했습니다. 돈이 떨어지면 라면 국수 수제비로 해결했어요.


그러다가 지겨우면 학교 앞 '밥 할매집'에서 통 사정을 하고 밥을 얻어먹기도 했지요.


밥 할매집에는 언제나 가마솥에 누룽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어요.


할매는 그때마다 "오늘도 밥을 태워 누룽지가 많네.내가 늙었나 봐. 누룽지는 손님에게 팔지 않으니 실컷 먹으래이" 돈이 생기면 가끔 밥을 사먹기도 했는데 이따금씩 거스름돈을 더 주시는 거예요. 돈도 없는데 잘됐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 그러다가도 은근히 재미도 있고 잔돈이 생겨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았죠. 


그렇게 세월이 흘러 흘러갔는데 어느 날 할매집을 지나다 보니 조그만 식당 문이 잠겨 있었어요. 


며칠 후 조회시간에 선생님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모두 눈을 감아라. 밥할매집에서 음식 먹고 거스름돈 잘못 받은 사람은 손 들어라" 잠시 시간이지나고 나서 "많기도 많다.


선생님은 침울한 목소리로 " 밥 할매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유언장에 의하면 할머니의 전 재산은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 기증하셨다. 그 아들에게서 들은 얘긴데, 돈 없어 보이는 학생들에게는 일부러 거스름돈을 더 주셨다 더라. 그리고학생들을 위해 일부로 밥을 태우셨다. 그래야 애들이 마음 편하게 먹는다고.


하교하는 길에 밥 할매집을 쳐다보니 유난히 '밥 할매집' 간판이 크게 들어와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말았답니다. '할머니 정말 죄송해요, 할머니가 만드신 누룽지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어요"




다섯 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유독 병약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똑똑하지 못해 아버지는 늘 가슴이 아팠다.


어느 날 아버지는 다섯 그루의 나무를 사서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며 1 년 기한을 주었다.


"가장 잘 키운 아들에게는 큰 상을줄것이야".


약속한 1년이 지났다.


자식들과 함께 나무를 둘러본 아버지는 그 중 가장 크고 잘 자란 나무에 다가갔다.


그 나무를 키운 자식은 아버지가 항상 걱정하던 그 아들이었다. 


"너는 나중에 유명한 식물학자가 될 수 있겠구나, 너를 도와주겠다" 그 아들은 그 나무를 꾸준히 돌보았다.


하루는 잠이 오지 않아 그 나무를 보러 갔더니 어스름한 밤에 누군가가 그 나무에 물 조리개로 물을 주지 않는가. 살금살금 가까이가보니 아버지였다.


그 아들은 열심히 공부하며 성실하게 자라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으니 프랭클린 루즈벨트이다. 


미국 최초 4선 대통령으로서 국내적으로는 1930년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고 대외적으로는 제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며 미국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딸이 여행 중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자동차가 언덕아래로 구르는 큰 사고였다.어머니만 상처가 가벼울 뿐 아버지와 딸은 크게 다쳐 병원에서 입원 수술을 했다.


특히 딸은 상처가 깊어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다.


당시 사춘기였던 딸은 마음의 상처가 더 컸다. 학교 체육시간에 혼자 앉아 있어야 하는 신세가 너무나 처량했다.


그나마 목발을 같이 짚는 아버지가 큰 위안이 되었다.


딸이 투정을 부려도 아버지는말없이받아줬다.딸은 사춘기를 잘 넘기고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 해 어느 날 세 식구가 동네를 지나가는데 마침 그 앞에서 꼬마 녀석이 공놀이를 하다가 공이 그만 찻길로 구르고 말았다.


꼬마는 좌우를 살피지 않고 자동차들이 오가는 큰길로 달려들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목발을 내던지고 큰 길로 뛰어들어 꼬마를 안고 길 건너 쪽으로 피한 것이다.


순간 딸은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어머니는 딸을 꼭 껴 안고 "얘야, 이제야 말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사실은 아버지는 수술 후 점점 차도가 좋아져 다리가 불편하지 않으셨단다. 그런데 네가 목발을 짚어야 하기에 자청해서 지금껏 목발을 짚으셨지." 


이 말을 들은 딸은 저 쪽에서 꼬마를 안고 빙긋 웃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크게 보였다.


 

<독일에서 Byung-Won Sohn 님 기고> 



** 위의 글은 유로저널 독자님의 기고문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는 부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유로저널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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