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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Republic of Georgia)

by eknews posted Apr 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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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Republic of Georgia)

현대 조지아 국기는 1991년 항소련 독립운동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2004년에 제정 되었다. 흰색 바탕에 십자군을 상징하는
5개의 붉은 십자가로 이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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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지역인 코카서스 (Caucasus)에 위치한 조지아는 서쪽으로 북해와 마주하고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동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 남쪽으로는 터키와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수도는 트빌리시(Tbilisi)이다. (출처: UN) 

미국의 조지아 주(州)와 혼동되기도 하는 유럽의 국가 조지아는 2015년 기준 GDP 약 $137억 (출처: IMF)의 세계 117위의 저개발국가이다. 1991년 구소련연방에서 독립한 조지아에는 약456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83% 이상이 조지아인이며 아제르바이잔인, 아르메니아인, 러시아인 등 역시 조지아 영토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지아라는 국명은 로마시대의 기독교 성인 게오르기우스(St.Georgius, 영문표기 St.George)를 흠모한 조지아인들이 성인의 이름따서 국명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설에 부합하듯, 조지아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조지아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경계 지역에 위치해 교통 및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동시에 역사적으로 그리스, 로마, 터키 제국들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독립된 나라로 가장 큰 세력을 떨친 시기는 10-13세기 조지아 왕국이 강성하던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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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쇼타 루스타벨리의 서사시- '표범 가죽을 입은 기사' 필사본 컬렉션. 코카서스와 중동 지역의 중요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측면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역사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출처: UNESCO)

특히 12-13세기는 조지아 왕국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시기 동안 다수의 대성당들이 건축되고 민족 서사시 ‘표범 가죽을 입은 기사(Knight in the Panther's Skin)’와 같은 조지아 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들이 이 시기에  탄생하게 된다. 

이후 800년 동안 몽골 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침략으로 조지아 왕국은 점점 약화되어 봉건 제후들이 다스리는 여러 영토로 분열되고 16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사파비 페르시아(이란)와 오스만 제국(터키)의 지배를 받는다. 18세기 후반에는 조지아에 세력을 넓히던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조지아에 대한 완전한 지배권을 얻게 된다. 

이 후 러시아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민족주의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된다. 189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조지아 출신 민족주의자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이오세브 주가슈빌리 (Ioseb Besarionis dze Jughashvili)’라는 낯선 이름의 청년이다. 이 청년이 바로 러시아어로 “강철”이라는 뜻을 가진 ‘스탈린’으로 개명하고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 구 소비에트 연방 총리가 되는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이다. 스탈린은 조지아의 수도 트블리시에 소재한 신학교를 다니던 중 공산주의 서적들을 접고 종교와 민족보다는 마르크스주의를 우선시하게 된다. 이후 러시아 사회민주당에 입당하고 볼셰비키파의 지도자로 성장하면서 조지아가 아닌 러시아로 활동무대를 옮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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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당시 23세의 스탈린(1878-1953)의 사진이 표지로 사용된 시몬 세백 몬테피오레의  ‘젊은 스탈린 (Young Stalin) 전기’

1917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자 조지아 민주공화국으로 공식 국명으로 서방사회와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승인 받는다. 그러나 1921년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의 붉은 군대가 다시 조지아를 점령하고 볼셰비키파 정부를 세운다. 이때 조지아와 소련 정부 내에 조지아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볼셰비키 온건파와 소련 중앙정부에 철저히 순종하는 볼셰비키 강경파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된다. 특히 소련이 조지아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자캅카스 연방(Transcaucasian SFSR)에 편입시키려고 하자 볼셰비키 온건파의 격렬한 저항이 발생되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강경파 스탈린은 조지아 민족주의자 십만 명 이상을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보낸다. 1936년 자캅카스 연방은 해체되지만 조지아는 1936년부터 1991년까지 독립국이 아닌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의 종속국 중 하나로 남게 된다. 

1989년 11월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의 공산정권이 붕괴조짐을 보이면서 조지아는 독립을 주장하며 소련연방에 대항한다. 이에 소련군은 시위하는 조지아 군중에게 발포하여 수 많은 사상자가 나오면서 반소련 독립운동은 더욱 크게 확산된다. 조지아는 소련 연방이 공식적으로 붕괴되는 1991년 12월로부터 8개월 전 독립을 선언하며 소련으로부터 분리된다. 그러나 친러 성향의 남오세티아와 압하스 지역의 독립 선언 및 정당 갈등으로 1992-1994년간 조지아는 내전에 돌입하고 1997년에 이르러서야 정권이 안정된다. 

그러나 2003년 정부의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무혈 시민 운동 ‘장미 혁명’을 통해 1992년부터 집권했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퇴진하는 등 다양한 정치적 변혁기를 거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날에는 조지아에서 독립해 러시아로 편입하려는 남오세티야를 둘러싸고 ‘5일 전쟁’으로 불리는 러시아-조지아 전쟁이 발발하여 코카서스 지역 전반에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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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발발한 러시아-조지아 간의 참혹한 전쟁 실상과 종군기록을 보여주는 레니 할린 감독의 헐리우드 영화 ‘5 데이즈 오브 워(5 Days of War (2011)’ 

현재 조지아와 러시아 관계는 2012년 새로운 친(親)러시아 행정부 출범 이후 단절되었던 외교 관계나 무역이 재개되는 등 일부 분야에서 관계가 개선된 상황이지만 여전히 조지아 내에서는 2008년 전쟁에 대한 강한 반감과 남오세티아와 압하스 독립 문제 및 에너지 자원의 소유권 갈등으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러시아는 조지아에 대해 회유책을 써가며 관계개선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 변화의 이유는 조지아가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놓고 대립 중인 EU와 NATO가입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해 12월 EU가 조지아인에 대해 무비자 여행을 승인하자 러시아 역시 무비자 여행을 승인을 검토 중이라고 대응하였는데 이 또한 러시아의 EU에 대한 민감한 태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조지아는 사실 ‘코카서스의 이탈리아’라고 불릴 정도로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나라이기도 하다.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 (Alexander Pushkin)이 “음식 하나 하나가 시와 같다 (every Georgian dish is a poem)”라고 극찬한 것처럼 조지아 음식은 여러 민족과 문화가 섞여 다채로운 맛을 낸다. 특히 조지아는 와인의 최초 발생지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듯 흑해 연안에서 8천년 전의 포도씨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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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롭고 맛있기로 유명한 조지아의 전통 음식들 (출처: 조지아 관광청)

조지아는 2003년 장미혁명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로 혁신하기 위해 기존의 부패한 장관들을 포함한 다수의 고위 공무원들과 경찰들을 대거 해고하는 한편 세금의 종류와 수를 축소하는 등의 급진적인 정부 개혁과 경제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피나는 노력 덕분에 2011년에는 GDP 성장률 7.2%를 기록하였고 세계 은행이 189개국(2016년 기준)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사업하기 편한 나라(Ease of doing business index)’ 순위에서 112위(2004년)의 하위권에서 8년만에 최상위권인 16위(2012년)로 순위가 급상승하였다. 이는 세계 은행이 평가를 시작한 이래 최고의 도약으로 기록된다. 2015년 기준으로 24위로 순위가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코카서스 지역에서 사업 및 투자하기에 가장 좋은 나라로 평가된다. 

조지아는 2011년 이후 경제 성장율이 다소 둔화되어 2016년 GDP 성장률은 2.6% 수준이 예상되는데 이는 주요 무역국인 러시아와 주변 코카서스 지역의 불경기로 인해 수출, 송금유입 및 투자가 감소되고 (2015년 기준 각각 24%, 23%, 34% 하락) 주요 산업인 관광업이 침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무역상대국들의 화폐 평가절하와 자국 내 정치적 불안까지 겹쳐 조지아 화폐 라리(Lari)가치는 2015년 1월부터 정부가 개입한 9월까지 크게 하락 (약21%)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아는 유럽, 아시아, 중동의 교차점에 위치해 다양한 시장의 접근성, 인프라 및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들을 통한 꾸준한 사회 인프라 개선, 높은 정부 청렴도 등 여전히 다양한 투자 매력을 지닌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작년 8월 조지아 정부와 한국의 수자원공사(K-water)가 이탈리아 건설사 살리니 임프레질로(Salini Impregilo)와 함께 추진 중인 넨스카 수력발전소 건설은(Nenskra hydropower project)은 조지아가 독립한 이후 최대규모의 수력발전 프로젝트로 완공 시점인 2020년 이후에는 조지아 전역은 물론 해외까지 수출될 수 있는 전력이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간편한 인허가 제도, 낮은 관세율, 주변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 노동자의 높은 교육 수준 및 영어 구사력도 향후 조지아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요소들로 작용될 것이다. 이러한 친 사업적인 환경을 바탕으로 현재 지속되고 있는 정부의 환율조정 정책과 아제르바이잔, 이란, 러시아 등의 주변국들과의 전력망 보완 정책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조지아는 현재의 경제 침체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빈나리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런던 소재 국제금융기구 유럽개발부흥은행
  (EBRD) 근무 
- 유럽,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등 EBRD의 
  26개 개발도상국 관련 업무 담당
- 미국 코넬 대학 졸업
- 일본 와세다 국제 관계학 석사 MA
  (일본 정부 장학생) 및 영국 캠브리지 경영학 
  MBA (영국 정부 장학생)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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