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저널 와인칼럼

박 우리나라의 프랑스 와인 기행 6 : 겨울의 반가운 손님 굴과 와인의 조화

by eknews posted Feb 0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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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우리나라의 프랑스 와인 기행 6>

겨울의 반가운 손님 굴과 와인의 조화


겨울의 빠리.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빠리의 겨울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우울하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우울한 회색빛 겨울이 기다려지게 하는 것이 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제철을 맞은 신선하고 다양한 프랑스의 굴이다.

 

필자는 우리나라에 있을 때 굴을 먹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릴 적에 처음으로 생굴을 먹었을 때였는데,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었는지 입에 넣는 순간 너무 비려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숙하여, 이미 식탁예절이란 것을 깨달아버렸던 필자는 입에서 굴을 뱉어낼 수가 없었다. 다들 알다시피 입에서 굴이 튀어나오는 장면이 입맛을 돋우는 장면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결국 그 비리고 물컹한 물체를 꿀떡 삼킨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나에게 굴은 못 먹는 음식이 되었다. 식사 전에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표한다. 상상하지 말자!

 

그런데 프랑스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 중의 하나가(사실 꼭 먹어봐야할 음식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바로 다양한 산지에서 나오는 신선한 굴 아닌가? 특히, 프랑스에 오면 사계절이 천고마비의 계절인양 풍성하게 살이 찌는 한국 여성들과 달리, 하루가 다르게 쪽쪽 말라 앙상해져 가는 남성들에게는 스태미너를 위해서라도 찾아 먹어야 할 음식이다. 우리들의 큰 형님 무슈 카사노바께서 뭇 여성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매일 엄청난 양의 굴을 섭취했던 것을 잊지 말자.

 

굴은 비린 음식이라는 선입견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필자는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굴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처럼 음식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하는 상황에서는 훌륭한 식당으로 가야 한다. 어정쩡한 수준의 식당은 그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나는 못 먹는 음식이다.'라는 확신으로 만들기 쉽다. 지나치게 값싼 식당에서 푸아그라(foie gras)를 먹는다면 푸아그라는 세계 3대 진미라기보다는 단지 비리고 느끼한 지방 덩어리라는 기억으로 남을 확률이 높은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아내,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미식가 부부, 이렇게 넷이서 노르멍디(Normandie)의 트루빌(Trouville)로 향했다. 그곳에는 그 부부의 단골 식당이 있었는데 그 식당을 알게 된 이야기도 재미있다. 어느 날 이 부부가 트루빌에 갔을 때, 굴을 먹으러 한 식당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식당의 주인이 굴을 먹으러 왔다면 자기 집보다 옆집에 가보라고 추천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놈의 나라가 장사를 이런 식으로 하는건가? 자기네 집에서도 굴을 팔지만 사실 굴보다는 다른 음식이 전문이고, 굴은 옆집이 제일 맛있으니 그집에 가서 먹으라니 말이다정말 재미있는 나라이다.

 

그런 사연으로 옆집에서 맛 본 굴은 명불허전, 정말로 훌륭했고 그 이후로 그 부부는 그 식당의 단골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나는 그 부부가 처음 들어갔다던 그 집에 찾아가서 그 집 전문 음식을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맛있을 것이다. 여하튼 우리는 그 식당에 가서 전식으로 3곳의 서로 다른 산지의 생굴, 그리고 새우와 소라를 주문하고 본식은 나중에 주문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직원에게 와인을 한 병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비교적 고급인 부르고뉴의 화이트 와인, Domaine Sylvain LangoureauSaint-Aubin 1er Cru En Remilly를 강하게 추천했다. 개인적으로는 생굴과 함께 마시기에는 너무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가격대비 품질이 좋기로 이름난 산지와 생산자였었기에 주문했다. 그리고 필자의 본성이 워낙 착한지라 직원이 그렇게 좋다고 하는데 다른 것을 고를 수가 없었다. 사실은 그 당시 아직 프랑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리바리하던 시절이라 거절하는 방법을 잘 몰랐었다. 그리고는 속으로 본식에 버터 소스의 생선 요리를 선택하면 잘 어울리겠지.’ 하며 소심하게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아주 차갑게 서빙된 와인은 과실 향이 산뜻하고 산도가 잘 받쳐주면서도 단단한 구조감이 입안에 다소 묵직한 느낌을 얹어주었다. 확실히 맛있는 와인이었다. 우리들 모두는 와인에 아주 만족을 했었고, 와인을 추천해 준 직원과, 본의는 아니었지만 그 와인을 선택한 나는 서로 우쭐한 눈빛을 교환했었다. 우리는 음식이 나오기 전 먼저 와인으로 입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와인이 너무 차가워서 풍성한 향이 다 살아나지 않은듯 하여 얼음통에서 와인을 빼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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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참으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였다. 투명하고 영롱한 굴의 빛깔은 자신의 신선함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했다. 나는 약간의 경계심을 남겨둔 채로 굴을 입속으로 살며시 넣었다. 아니, 이럴 수가! 향긋한 바다내음이 구렁이 담 넘듯 내 목으로 후루룩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리고 와인을 한 모금 마시니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우리는 산지별로 조금씩 다른 굴의 묘미를 느끼며 그 큰 접시를 순식간에 비웠다.

 

함께 갔던 부부가 세 산지의 굴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우리 부부는 조금씩 다른 특징이 있지만 이즈니(Isigny) 굴이 정말 맛있었다고 대답했다. 결국, 우리는 이즈니 굴 3접시를 추가 주문했다. 사실 이미 우리가 먹은 굴이 산지별 12개씩 총 36개였고, 새우와 소라도 있었으니 4명의 전식으로 적은 양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게 먹고 또 3접시를 더 시키겠다고 하니 주문을 받는 직원이 놀라며 주문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정도였다.

 

새로운 굴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얼음통에서 꺼내 놓아 조금 덜 차가워진 와인을 마셨다. 와인의 온도가 조금 높아지자 산도가 좀 차분해지고 오크통 숙성으로 인한 바닐라 향과 구운 빵 향기가 은은하게 돌았다. 처음보다 향이 더 복합적이고 풍성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와인에 감탄하고 있는 순간 36개의 기쁨이 놓인 접시가 다시 등장했다.

 

역시 맛있었다. 나의 굴에 대한 편견이 말끔하게 사라진 순간이었다. 굴을 꿀꺽 삼키고 입안을 깔끔하게 헹구기 위해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넣었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굴이 비리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굴이 갑자기 상한 것인가? 아니면 와인이 갑자기 이상해진 것인가? 굴은 여전히 신선했고, 와인은 여전히 맛이 있었다. 비린 맛의 원인은 굴과 와인의 관계,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높아진 와인의 온도와 굴의 관계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상큼하고 가벼운 화이트 와인의 경우 약 10~12도로 차갑게 마시지만, 좀 더 복합적이고 무게감이 있는 고급 화이트 와인의 경우에는 풍부한 향을 살려내기 위해서 이보다 좀 더 높은 12~14도에서 주로 마신다. 굴이나 조개류와 같은 해산물의 경우 가볍고 상큼한 화이트 와인을 차갑게 해서 마셔야 잘 어울리는데, 내가 선택한 와인은 그렇게 차갑게 마시기에는 좀 아까운 고급이었다. 그래서 그 와인의 잠재력을 살려내기 위해 온도가 조금 올라가도록 했더니, 산도는 좀 낮아지고 웅크리고 있던 바닐라와 토스트 향은 활짝 피어올라 전보다 훨씬 웅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바닐라와 토스트 향은 굴의 비릿내도 피어오르게 했다.

 

와인을 더 맛있게 마시려면 덜 차갑게 마셔야 하고, 굴과 더 잘 어울리게 마시려면 더 차갑게 마셔야 하는 상황. 뭔가 잘못된 만남이었던 것이다. 만약 전식으로 가볍게 굴을 먹고 바로 버터 소스 생선 같은 본식을 먹었다면, 처음에는 상큼했다가 나중에는 풍성해진 이 와인과 환상적으로 어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전식인 굴로만 식사를 마치게 될 줄은 우리도 그 직원도 몰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주 만족했었다. 굴만으로도 무척이나 훌륭한 식사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폴레옹도 굴로만 식사를 한 적이 많다고 하지 않나.

 

그렇다면 그 식당에서 굴을 먹던 평범한 프랑스인들은 어떤 와인을 마시고 있었는가? 우리가 흔히 굴과 최고의 조화를 이룬다고 알고 있는 샤블리(Chablis)였을까? 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뮈스카데(Muscadet)를 마시고 있었다. 이 와인은 루아르 서쪽, 대서양과 가까운 뮈스카데라는 마을에서 나오는 와인으로 레스토랑의 화이트 와인 리스트에서 가장 저렴한 것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서 나오는 와인이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드라이하고 가벼운 맛과 향이 해산물과 무척 잘 어울린다. 모든 사람이 와인 전문가라는 프랑스인들이 단지 싸다는 이유만으로 그 와인을 굴에 곁들였을 리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대로 프랑스에서는 어떤 음식과 와인이 멋진 조화를 이룰 때 이를 두고 마리아쥬(Mariage) , 결혼이라고 부른다. 흔히 사회에서 최고의 남자, 최고의 여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결혼한다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가 자신의 대단함을 뽐내면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보다, 비록 각자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서로의 장점은 돋보이게 하고, 단점은 채워주는 사람들이 만났을 때 행복한 결혼 생활이 되지 않을까? 겨울이 다 가기 전에 굴과 뮈스카데의 마리아쥬를 한 번 느껴보길 바란다. 자신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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