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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Rooms : Joseph Beuys

by eknews posted Aug 0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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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Rooms : Joseph Beuys
Tate Modern /  23 Nov - 31 Dec 2016



테이트와 스코틀랜드 내셔널 갤러리의 소장품 중 특정 작가를 선정하여 집중 연구하는 프로그램인 아티스트 룸(Artist rooms)이 요셉 보이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요셉 보이스는 전후 유럽 미술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그의 삶과 예술이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보이스’라는 작가는 복잡한 인물로 남아 있다. 국내에서 비교적 인지도나 인기가 덜한 개념미술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백남준의 동료 작가로도 친숙한 작가로 꼽힌다. 60년대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미술운동 플럭서스를 통해 백남준과 만난 그는 백남준과 함께 여러차례 공동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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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70]


요셉 보이스의 미술작품에서는 작가 자신의 사고 자체가 전면에 등장한다. 그는 사고의 소통을 위해, 바로 관람자와 사회적 소통을 하기 위해 전통적인 미술작품에서 사용한 형식 내지는 내용과 전혀 관계가 없는 재료를 선택하고, 이것으로부터 창작과정과 결과를 보여주는 작품인 플럭서스나 퍼포먼스 또는 행위예술과 설치미술이라는 형태를 고안해냈다. 그의 작품은 기존 미술이 갖는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 의미를 포용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개념적인 작업들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비전통적인 재료와 전형적인 오브제를 사용하고 환경을 변화시키는 행위로서 인간의 인지경험과 상상력, 그리고 그 행동의 한계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인식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요셉 보이스의 작업세계를 살펴보면 설치조각, 드로잉, 오브제, 행위예술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요셉 보이스의 오브제

 요셉 보이스는 예술이 감정이나 영감에만 치우쳐 소홀히 할 수 있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예술이 지니는 감상적인 측면에 과학적 사고를 접목시킴으로써 오브제를 우연의 개념을 지닌 조형언어에서 이론적 배경을 지닌 상징물로 발전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어떤 예술이든 정확한 예술의 개념을 세우려는 그의 노력은 오브제를 단순히 예술을 표현한 조형언어에서 사회 전반에 걸쳐 적용하여 종국에는 이를 통해 사회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확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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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ning with Stag in it's Glare, 195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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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haus (Vitrine), 1953–62]


 오브제는 구리, 펠트천, 지방덩어리, 그랜드 피아노, 각종 공업생산품등을 구사하고 있는데 한가지 중요한 점은 이러한 오브제와 재료들이 모두 개인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일례로 그가 일관되게 사용해온 펠트천과 지방덩어리는 젊은 시절, 전쟁에서 부상해 사경을 헤맬때 그를 발견해 치료해준 타타르인들이 민간요법으로 사용했던 물질이다. 이외에 펑범한 공업용 생산품이나 소도구들로 작가 자신에겐 특별한 상징성을 갖는 개념의 대체물들이다. 그는 또한 사슴, 코요테, 토끼 등 동물들을 자연과 인간의 상징으로 표현했다. 실제 사슴은 유럽에서 영혼을 불어넣는 존재로 인식돼 있다.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녹색당에 가입해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예술작업의 본질을 휴머니즘에 두었다. 다양한 예술행위를 통해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널리 확산시키고자 했던 그는 예술가는 결국 이러한 `사상과 에너지의 흐름'을 대중에 전파시키는 매개자, 주술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예술을 통한 사회적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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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all to Action, 연도미상]

 요셉 보이스의 시대는 20세기의 인류참사인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으로서의 독일의 위치, 그리고 전후 소위 ‘라인 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적 부흥과 그 이면에 가려진 심각한 사회문제가 공존하는 시기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자부했던 유럽의 역사적·문화적 유산들을 모두 파괴했고 인간성은 바닥에 떨어졌으며 인류의 진보적 역사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산산이 부숴 졌다. 전후 독일은 미국의 원조 아래 눈부신 물질적·경제적 재건을 이뤄냈으나 이와 함께 침투한 자본주의 구조는 당대 청년층, 즉 전쟁과 물질적 어려움을 겪은 소위 비관세대를 만들었고 이들은 사회적 출세나 물질적 풍요로움에 관심을 둠으로써 사회구조와 문제에 대해선 무비판적이고 무관심했다. 이 시기 유럽은 그야말로 허무주의 그 자체였다.

요셉 보이스는 이러한 독일 격변의 시기에 중심에 있었다. 그는 세계대전에는 비행기 조종사로 참전하여 추락 사고를 겪었고, 전후 뒤셀도르프 미술대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68혁명의 주도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사회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고 68혁명을 기점으로 예술의 사회·정치적 실현을 시도했다. 1967년 ‘독일학생당’에서 활동하고 1971년에는 ‘국민투표를 위한 직접 민주주의 조직’을 창설하는 그의 열정은, 1973년 ‘창의력과 학제적 연구를 위한 자유국제대학’에 까지 이르게 된다. 보이스는 이처럼 근대 이후 삶과 분리된 ‘예술을 위한 예술’에 대한 회의와 전쟁으로 인한 시대적 허무주의, 그리고 68혁명을 거치면서, 예술이 삶과 연계하면서 어떻게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동시에 존립 가능할 수 있을지를 깊게 고민하고 실험한 작가였다. 보이스의 작업이 어디에도 편입되지 못하고 독보적이며, 많은 오해와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그의 이론과 활동이 미술만으로는 이해되기 힘든 사회개혁적인 성격과 사상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보이스의 예술이론과 후기의 사회·정치적 활동들은 단순한 발상이나 정치적 쇼맨십이 아닌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초래한 허무주의는 시대의 종말, 나아가 예술의 종말까지 예견했고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보이스는 예술의 절대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새로운 예술을 실험했으며, 결국 예술의 사회·정치적 실현이라는 정점을 찍게 된 것이다. 본 전시를 통해 오늘날 미술의 주요 쟁점인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과 연관된 것으로서 시대와 조응하는 예술로서 보이스의 사회·정치적 활동들은 재평가 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이화여대 미술학부 졸업
- 이화여대대학원 조형예술학 전공 
- 큐레이터, 아트 컨설턴트, 미술기자,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
- 이메일 iamjeehy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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