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의 프랑스이야기

문학과 예술이 전해 주는 편지 - 편지가 전해 주는 문화와 예술

by 편집부 posted Jan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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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이 전해 주는 편지 - 편지가 전해 주는 문화와 예술


끌로드 르훼브르Claude Lefe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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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눼 부인 Madame de Sevigné1665년


딸에게 주는 일상의 잔소리, 잔잔한 사랑을 편지로


 가장 알려진 세비눼 후작 부인 Madame de Sévigné, 1626 - 1696 .의 즉흥적이고 생생한 기록을 담긴 편지도 서간 문학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당시 멀리 시집간 딸 아이를 직접 만나 본다든지 방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시대다. 25년 동안 매주 두 세통의 편지를 썼다. 세비눼 부인의 편지는 1725년일부 발췌하여 미밀리 출판하였다. 


1726년 손녀딸 폴린 드 그리냥, Pauline de Grignan,드 시미안 후작부인이 할머니의 서간집 출판을 의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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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눼 부인-작자 미상-까르나발레 박물관


여인이 화가 앞에 자세를 취할 때 반드시 갖추는 액세서리들로 잉크병과 붓 그리고 편지지 붉은 밀납 봉과 도장 그리고 잉크를 말리는 가루가 함께한다.


내면의 시간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라고 감히 추천한다.  

여인이 붓을 들고 있는 초상화가 누가 그렸는지 모르지만 박물관에 걸려 있다. 여인들에게 금기가 많던 시절 ,여인이 미술학교나 음악원 입학이 금지되었던 시절이다. 여인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거의 없던 시절이다.


귀족 부인들이 살롱에 모여들기 이전의 시대에 붓을 들고 무엇인가 글을 쓴다는 것도 큰 용기다. 


그림으로 보여 주는 편지


편지를 전문적으로 전달해 주는 직업인으로 우체부가 있다. 예전에 먼 곳에 사는 친구나 친지에게 자기 마음을 생각을 전달해 주는 유일한 수단이 편지였다. 21세기 편지는 이 메일로 순간 동시적으로 발송하고 받기 때문에 마음과 생각도 옛 날 같은 여유가 없다.

예술의 역사에서 아마 가장 많은 편지를 남긴 이는 빈센트 반 고흐다. 그가 쓴 편지를 읽으면 어떤 예술평론가가 한 줄 쓴 것보다 명료하게 그의 작품에 가까이 갈 수가 있다. 

그의 마음과 지식을 동료들의 가족의 이야기를 전달해 준 소통의 전령 우체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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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젭 룰렝의 초상화Le Portrait de Joseph Roulin 벵상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88년 81,3 x  65,4 cm 보스톤 미술관



1888년 2월 말 아를르에 도착한 반 고흐는 카페에 임시로 짐을 풀었다. 

까발르리 거리에, 같은 거리에 룰렝씨가 살았다. 아마 두 사람은 카페에서 만났을거다. 상상력이 풍부하면 이 우체부가 반 고흐의 편지를 배달해 주는 분으로 적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분은 당시 아를르 역에서 우편물을 기차에서 올리고 내리는 일을 담당했다. 당시 나이는 47세 신장은 거의 2미터에 달했고 황금색으로 장식된 파란 제복을 입고 있다면 그 누구의 시선도 피할 수 없었지.


처음 룰렝씨를 만나 인상을 동생 테오에게 전한 편지에 “돈을 받지 않는 이 친구가 나와 함께 먹고 마시는 데 비용이 더 나가는데 로쉬포르의 등도 주었지. 하지만 별로 중요한 건 아니야 그는 정말 아주 잘 포즈를 취했지. 룰렝은 이 일도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 "궁핍함을 모르는 반 고흐도 불평을 늘어 놓았지, “ 그 친구 봉급이 135 프랑이야, 아이 셋을 키우고 자기와 부인이 먹고 살아야 한다구…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 

반 고흐의 일생은 결핍의 일생이었다. 식량과 건강이 부족하였고 애정 결핍이었다.


반 고흐의 일생에 우정이나 형제애를 보여줄 수 있는 드문 예는 동생 테오 반 고흐와의 관계였다. 또 다른 예를 찾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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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일부, 교회 사람들, 동네 친구나 화랑의 동료들, 예술가들은 빈센트를 조롱하고 다툰 다음 말 한마다 없이 빈센트 앞에서 도망쳤다. 사촌 누이 키Kee 가 “안되, 결코, 절대 안되” 라는 내 뱉었을 때 그의 마음은 찢어졌고 평생 마음에 상처로 남았다. 

가족 일부의 사랑을 제외하면 다른 나라 다른 세상에서 온 정신 나간 화가에게 경멸,두려움 몰아해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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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나라에서 빠리에 찾아 왔을 때도 빛이 달라 진 것을 느꼈고 더 남쪽 프로방스 아를르에 왔을 때는 동양에서 보내 준 빛이 맑고 명료하여 영혼을 흔들어준 느낌을 받았다. 더구나 아를르에서 지속적인 우정을 나눌 친구 한 명, 룰렝 우체부와 그 가족과 만남이 반 고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독특한 우체부 룰렝은 남들이 무시하고 조롱하는 빈센트의 인간됨과 작품 모든 것을 존중해 주었다. 조젭 룰렝의 초상화 여섯개 중 하나다.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룰렝의 아기 탄생을 알렸다. “이 착한 친구 기쁨으로 빛이 나고 있어.” “아기는 ..웃으면서 왔고 …아주 건강해..” 


프로방스 시골 사람들은 부쪽에서온 반 고흐의 이름을 부르기가 어려워 그냥 벵상이라고 불렀고 벵상 반 고흐는 작품에 싸인할 때 벵상(Vincent)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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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렝에게 준 여섯 점의 작품들은 랑베스크에 은퇴한 룰렝의 부모님 침실을 장식하였다. . 아이들과 부모 초상화 다섯점과 합죽도 꽃이 담긴 화병이 있다. 


1895년 인상주의자들과 입체파들,야수파들의 화상 앙브르와즈 볼라르Ambroise Vollard는 룰렝에게 편지를 보낸다. 우체부 룰렝은 디스크로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450 francs의 제안을 받는다. 당시 반 고흐의 그림을 찾기 시작하는 화상들이 많아져 결국에 900프랑에 이 불행한 친구의 작품들 자기 가족의 얼굴을 넘겼다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테오

bonjourbib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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