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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서 실종된 예술가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3



3. 선원이었던 나이브 아티스트, 알프레드 월리스 (Alfred Wallis , 1855 - 1942)


     영국의 나이브 아티스트 (naïve artist)의 원조, 알프레드 월리스는 데본포트(Devonport)에서 태어났다. 그는 원래 코니쉬 아이비스 지방의 어부였고, 그의 부모님(Charles and Jane Wallis)은 콘웰(Cornwall)의 펜잔스(Penzance) 출신이었다.


     그는 1850년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향 데본포트(Devonport)로 돌아와 학교를 마쳤다. 졸업후 바로 바구니를 만드는 견습생으로 일을 하다가 1870년대 초에 선원이 되었다. 펜잔스와 뉴파운드랜드(Newfoundland)를 오가며 스쿠너(Schooners)에서 항해를 했던 알프레드 월리스는 1876년 수잔 워드(Susan Ward)와 결혼을 한다. 그 때 그의 나이는 20살이었고, 그의 부인은 41살이었다.


     그는 부인의 5명의 자녀의 의붓아버지가 되었고, 가장으로서 뉴파운드랜드에서 심해 어부로서 생계를 꾸려갔다. 두 아이의 죽음으로 가족들과 더욱 가까이 지내기 위해서, 펜잔스에서 일을 하며 지방에서 낚시를 하였다.


    그후, 1890년 가족들과 세인트 아이비스로 이사와, 해양물품 가게 중개인이 되었다. 1912년 앤틱딜러인 아모르(Mr. Armour)씨와 일하면서 예술적인 안목을 키우게 되었고, 1922년 아내의 죽음 후, 그는 혼자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물체의 원근법은 무시하고, 풍경의 상대적 중요성에 의해 물체의 크기를 결정하여 그림을 그린 그의 작품들은 나이브 예술(naïve art)의 훌륭한 예이자, 영국 나이브 아트(native art)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30- Mear Beach.jpg


Alfred Wallis’s The Hold House Port Mear Square Island Port Mear Beach



     특히, 그는 기억을 더듬어 바다경치를 많이 그렸다. 그가 선원으로 일했었던 시절 증기배를 그린 후에는,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자신의 기억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돈이 넉넉지 못해서 선박용 잡화점에서 산 팔레트를 사용하고, 박스껍데기에 그림을 그리는 듯의 방법으로 임시 변통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30- Alfred Wallis.jpg


Alfred Wallis’s Boats at Rest in Mount’s Bay



     알프레드 윌리스가 그림 활동을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난 1928년, 영국의 작가 벤 니콜슨과 크리스토퍼 우드가 세인트 아이비스를 방문했다. 그들은 월리스의 작품을 보고 감탄을 했고, 세인트 아이비스에 예술가 군집(an artist colony)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벤 니콜슨은 나중에 ‘월리스에게 있어, 그의 작품은 그림이 아니라, 실제 사건 그자체이다(to Wallis, his paintings were never paintings but actual events)’라고 하면서 ‘그의 그림은 콘월을 벗어나, 세계적으로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뻗어나갈 것이다(Wallis' art 'something that has grown out of the Cornish seas and earth and which will endure) 라고 덧붙였다.


    이 후에도 평소처럼 작품활동을 계속하던 알프레드 월리스는 벤 니콜슨과 크리스토퍼 우드를 통해 런던에서 짐 에드(Jim Ede)로 알려져 있는 해롤드 스탠리 에드(Harold Stanley Ede, 1895-1990)를 만나 작품활동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죽을 때까지 작품은 그리 잘 팔리지 않았고, 가난속에서 작품활동을 계속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을 그는 자신의 이웃들이 그를 시기 질투를 하여 박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짐 에드에게 ‘이후에는 자신의 작품이 가치가 있을 것이다’라는 편지를 써, 와서 그림을 가져 갈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데이트 세인트 아이비스(Tate St Ives) 갤러리가 올려다 보이는 바눈 묘지(Barnoon cemetery)에 묻혔고, 거기에 그의 그림 스타일로 장식된 묘비가 세워졌다.
 



30- 윌리스 무덤 묘비.jpg


Wallis' grave in St.Ives decorated in the style of his paintings



     벤 니콜슨과 크리스토퍼 우드이 감탄을 금치 못했던 알프레드 월리스의 작품들은 현재 짐 에드의 집(Kettle's Yard)이나, 데이트 세인트 아이비스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사실 아카데미적 예술이 중심이었던 그 시절에, 월리스의 작품들은 그리 인정을 받지 못했다. 모던니즘의 작가들에 의해 나이브 아트가 주목을 받으면서, 마침내 그도 1930년대 영국미술사에서 가장 진보적인 예술가 중 한명으로서 그 중심에 편입이 된 것이다.



4. 예술가의 도시, 세인트 아이비스 (St Ives)


     나이브 아티스트 알프레드 월리스를 낳은 세인트 아이비스는 영국 콘월(Cornwall)의 지방 행정구이자 항구도시로, 펜잔스의 북쪽과 켈틱해 캄본(Camborne)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도시다.


     1920년, 이 곳에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 1877-1979)와 소지 하마다(Shoji Hamada, 1894-1978)가 리치 도예방을 열었고, 이것이 역사적으로 세인트 아이비스가 ‘예술가의 도시’로서 거듭나는 조짐의 시초다. 
 


30- 세인트 아이비스.jpg


세인트 아이비스



     일본에서 시게키치 우라노(Shigekichi Urano (Kenzan VI),1881-1923) 아래서 도예를 배웠던 리치는 스튜디오 도예가이자 미술선생님으로 ‘영국 스튜디오 도예의 아버지(Father of British studio pottery)’로 알려져 있다. 리치와 시게키치 우라노는 동서양의 예술과 철학의 시각과 관념으로부터 도자기를 생산하였다.


     리치는 1972년까지 작업활동을 하였고,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에서 1977년 그의 작품을 전시하였다. 현재 그와 그의 학생들의 작품들은 작은 박물관 진열장에서 볼 수 있고 구매도 가능하다.


    1928년, 벤 니콜슨(Ben Nicholson ,1894-1982)과 크리스토퍼 우드(Christopher Wood,1901-1930)가 세이트 아이비스에 와서 코니쉬(Cornish) 예술가 알프레드 월리스(Alfred Wallis)를 만나면서, 지금의 예술가 군락(the artists' colony)으로서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실은 이것이 바로 ‘예술가의 도시’로서의 시작이다.
 


30- white Relief.jpg


White Relief, 벤 니콜슨, 1936



5. 뉴욕만큼 흥미진진하고 런던보다 훨씬 진보적이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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