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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벽화 속에 남은 한 잔의 기운
고구려의 차를 말하려 하면, 우리는 먼저 글을 찾게 된다. 그러나 막상 펼쳐보면 정사(正史)의 문장 속에는 차에 대한 분명한 기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 앞에 먼저 다가오는 것은 뜻밖에도 ‘그림’이다. 벽에 남은 색채와 선, 곧 고분벽화(古墳壁畵)다. 이 벽화들은 말없이 많은 것을 전한다. 고구려의 차는 문헌보다 먼저 그림 속에서 말을 건다.
오늘날 영문 자료인 [고구려 고분벽화(Koguryo Tomb Murals)]에서는 연회 장면 속 인물들을 두고 “고인이 된 주인과 함께 차를 마시는 모습(drinking tea with the deceased master)"이라 하거나, “고인이 된 주인과 그의 두 아내가 차를 마시는 장면(the deceased master and his two wives are drinking tea)"이라 설명한다.

1418-문화 3 사진 1.jpg
 ▲ 집안 고구려 벽화의 차접대 장면(부분)
또한 유네스코(UNESCO) 국제 보존기관의 보고서에서도 “무덤의 주인이 차를 마시는 모습(tomb-owner drinking tea)"이라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서술은 단순한 번역상의 선택이라기보다, 그 장면에 담긴 생활과 의례의 형식을 ‘차(tea)’라는 문화적 코드로 해석하려는 학계의 시선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그 잔 속의 액체가 반드시 ‘차’였는지, 혹은 다른 음료였는지에 대해서는 엄밀한 논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고구려 귀족 생활의 한 장면에서 ‘다기(茶器)적 형식과 차를 마시는 행위로 읽히는 문화적 코드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문자 기록이 부재한 자리에서, 이미지가 대신 증언하는 역사라 할 수 있다. 

한편, 보다 물질적인 단서도 전해진다. 일본의 차(茶)학자 청목정아는 《청목정아전집(靑木正兒全集)》(1970, p.26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고구려의 고분에서 출토되었다는 원형의 소형박편의 떡차(餠茶)를 표본으로 가지고 있다.” 이 기록은 정사(正史)에 기록된 것이기보다, 출토품 전승에 대한 개인 수집자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성격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고구려 영역에서 ‘떡차 형태의 차 가공물’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간접 증거이기도 하다.

1418-문화 3 사진 2.jpg ▲ 평양 안악3호분의 차접대 벽화

 이 두 가지(벽화의 형상과 전승된 물질)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곧 고구려의 차는 “문장으로 남기지 않은 문화”였을지 모르나, 생활 속에서 이미 형식과 풍류로 자리 잡은 행위였을 가능성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마음과 사물의 관계를 드러내는 행위다. 
다시 말하면 잔을 들고 마주 앉은 인물들, 그 사이의 시선, 기물의 배치, 몸의 자세, 이 모든 것은 단순히 마시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정신적 장면이다. 
벽화 속 인물들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들의 행위는 색채와 선으로 남아 우리에게 전해진다. 이는 마치 마음이 사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형상은 사라지되, 그 형상을 가능케 한 기운은 남는다. 고구려의 차는 그래서 기록보다 깊다. 그것은 글이 아니라, 그림 속에서 아직도 마시고 있는 차(茶)기 때문이다.
(기고자:손병철 박사/시인, 우리문화신문)
한국 유로저널 노영애 선임기자,  yanoh@theeuro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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