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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자전거나라와 함께 하는 이탈리아 에세이 5화

예술이 갑이다, 피렌체 투어



투어를 할 때 참으로 신기했었던 점은 기대가 많은 손님들은 그만큼 실망을 하고 기대가 없었던 손님들은 그 자리를 감동으로 채워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기대와 실망은 실과 바늘처럼 언제나 함께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전제는 “기대하지 말 것”이라고 앞서 삶을 산 모든 이들은 말하지만 그게 쉬운가요. 더욱이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자에게 이것은 너무나 가혹한 것 이겠죠.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기대 와 실망 그리고 기대치 않았던 의외의 행복이 공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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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처음 올 때 머릿속에 상상했던 이곳의 풍경은 피렌체였습니다. 조금은 촌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막막하게 이탈리아를 꿈꿀 때 보았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풍경은 영화 맨 끝자리 앉아 보던 저를 폭풍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저 곳에 내가 가야 하는데......난 지금 이 영화관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괜히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 뒤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안에서 준세이처럼 고즈넉한 골목길을 스쿠터를 타고 누비는 상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의 여행지 중 가장 큰 기대감을 안고 갔던 도시는 피렌체입니다. 그래서 가장 크게 실망했던 도시 역시도 피렌체입니다. 르네상스의 발상지, 쥰세이의 도시, 예술의 도시를 상상했던 피렌체는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을 만큼 엄청난 관광객으로 넘쳐났습니다. 개인 관광객은 물론이고 세계각국의 단체 팀들로 모든 곳은 여백 하나 없이 가득 차 있었고 여기저기 동시다발로 설명을 하는 각국의 언어들을 듣고 있노라면 이곳에 없는 한가지는 이탈리아 사람들 인 것 같았습니다. 애당초 고즈넉한 골목길을 찾기란 불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나름 대도시 로마에서 온 저로선 좁은 골목길들도 답답했지만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에 분지의 지형까지 더해져 이탈리아에서 보기드믄 푹푹 찌는 더위를 맛보게 했습니다(대구 출신인 제가 이제야 겨우 대프리카의 더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피렌체의 두오모의 위용은 이제껏 본 어떤 건물들보다도 건물자체가 주는 감동은 최고였지만 도시 자체는 그저 관광지로만 몰락한 모습만으로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제외한 낯선 예술작품들은 어렵게만 느껴져 피렌체의 첫인상은 이렇게 기대만큼 실망만을 저에게 안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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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첫인상으로 인해 피렌체를 옛 명성과 현재의 유명세만 남은 도시로 치부해 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피렌체를 제대로 바라볼 시도 조차도 해보지 않은 듯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의 수 많은 미술관을 관람하다 보면 결국은 그 줄기를 따라가면 언제나 피렌체에 도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무수하게 퍼져있는 예술의 끈을 한줌에 잡고서 끌어당기면 결국 피렌체로 도달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유수의 미술관들의 작품들의 시작 그리고 그 사이사이 비워져 있는 과정들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언제나 피렌체의 르네상스 시대가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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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피렌체로 향합니다. 눈을 감고 수 많은 관광객을 지워버리고 이 도시만을 바라봅니다. 아무리 두오모의 돔이 크다고 해도 도시 어디에서나 돔이 보인다는 것은 이 도시가 결코 크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고 그들의 스승들의 도시. 갈릴레이 갈릴레오, 보카치오, 단테까지.. 예술, 과학, 문학,건축, 인간이 욕망하고 궁금해하는 모든 분야가 발달하고 그 분야의 천재들로 가득했던 도시가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오랜 시간 숯에 불을 붙이기 위해 숨을 불어넣다가 어느 순간 불이 붙으면서 숯 하나하나에 불길이 스며들고 한 순간 확하고 타오르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붙은 불꽃은 이제 더 이상 숨을 불어 넣지 않아도 스스로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불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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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에서 “르네상스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란 질문에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답합니다.

“처음부터 본질적인 질문을 하는군요. 그렇다면 나도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요인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루고, 본질적인 대답으로 응수하겠습니다.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의 분출, 바로 그것이 나중에 후세인들이 르네상스라고 부르게 된 정신운동의 본질이었습니다. 하지만,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은 분출만 한 것이 아니라, 미술을 비롯한 각 분야에서 ‘작품’으로 결정체를 이루었습니다. 단테도 말했지요.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그 생각을 입이나 펜이나 붓이나 끌로 표현해야만 비로소 ‘시엔차’가 된다고. 시엔차(scienza)라는 이탈리아어는 영어의 사이언스(science)지만, 이 경우에는 ‘과학’이나 ‘학문’보다 ‘지식’이나 ‘이해’로 생각하는 편이 적절할 것입니다.”

1000년간 사고의 암흑으로 가득 찬 중세가 기독교적 가치관의 붕괴와 함께 종지부 찍으며 인간은 이제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납니다. 하지만 판은 벌여졌으나 놀아본 놈이 잘 논다고…그들은 욕망에 비해 표현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발견해낸 새로운 창구가 고대 예술과 철학이었다는 것은 그 시작부터가 혁명으로 느껴집니다. 그들이 소위 이교도라고 불렀고 오래 전 그들의 조상들이 스스로 파괴했던 문화를 다시 흙 속에서 꺼내고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욕망하며 공부하고 과거에서 배우며 그 배움을 표현하는 과정들을 통해 예술의 주제는 다양해지고 그 안의 등장인물들은 숨을 쉬기 시작하고 작가들은 자신들의 철학을 가지게 됩니다. 유럽의 미술관을 관람 할 때면 가장 힘든 순간이 미술관의 처음 시작입니다. 대부분 작자미상의 머리 뒤의 금색 후광을 가진 토박한 중세의 그림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집니다. 그리고 눈을 즐겁게 하는 르네상스의 아름다운 그림들이 나타납니다. 이제 그림들 아래에는 작가의 이름이 적혀지기 시작하고 투어를 하는 가이드는 이제 그림 속의 성인 이야기와 함께 작가들의 이야기도 펼쳐내기 시작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도구일 뿐이던 작가에서 주체적 사고의 작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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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새로운 예술의 시대가 아닙니다. 고대부터 쌓여진 지식으로부터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하나하나가 모여 꽃을 피운 겁니다. (그래서 피렌체를 꽃의 도시라고 하는 건가요!!) 멋진 것은 각 분야의 발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이유가 이 모든 분야들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서로에 영향을 미치며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모습이 펼쳐집니다.


소수의 천재들의 힘이 아닙니다. 그들이 있기까지 수 많은 시행착오와 고민들이 쌓였기에 가능한 것이었겠죠. 그래서 피렌체의 예술작품을 보고 있자면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기분이 듭니다. 이 구도는 어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고 저 색은? 저 자세는? 그렇게 끝도 없이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1817년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을 나서던 스탕달은 심장이 마구 뛰고 생명이 빠져나가 쓰러질 것 같았다고 그의 책 [나폴리와 피렌체: 밀라노에서 레조까지의 여행] 에 쓴 이래 미술품이 준 감동이 신체의 이상을 일으키는 현상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부릅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듣고 “스탕달 너무 더운데 무리한 거 아냐?”라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1817년 신용카드도 없던 시대이니 자금의 압박, 일정의 압박 속에 작품 하나를 만날 때 마다 끝도 없이 보아야 할 작품들이 샘솟는 바람에 끼니도 거르고 무리하게 다니다 허기짐과 더위에 조바심까지 겹쳐서 까무러친 건 아닐까요? 심지어 가이드북도 없었으니 물어 물어 찾다 보면 얼마나 헤매며 다녔을지 상상이 갑니다. 스탕달이 쓰러진 이유로 크로체 성당 안의 지오토의 벽화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당시에는 벽화들이 회 칠로 덮여 있던 때였고 크로체 성당 앞 광장은 언제나 그늘 하나 없이 땡볕인걸 고려해 봤을 때 나름 일리가 있지 않나요?

르네상스 정신을 감탄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또 다른 시선을 선사한 글이 있습니다.


중국의 학자 위치우위의 유럽문화기행 1 권의 피렌체 부분입니다. 많은 유럽여행기가 있지만 같은 아시아 권의 시각으로 바라본 피렌체가 많이 와 닿았습니다.

“피렌체 거리에 선 나는 자꾸만 내 자신을 반성하고 있었다. 메디치 가문과 아무런 원한도 없지만 나는 왜 마음속으로 문예부흥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 그들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이는 중국의 어떤 전통적인 관념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의 재야 예술가나 문인들은 권력자들을 멸시하고, 권문세가의 집을 출입하는 일 자체를 치욕으로 생각해 왔다. 이에 반해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궁정 예술가들은 비교적 철저하게 명령을 받드는 도구가 되어 부귀를 노래하고 공덕을 찬송했다. 이 두 극단적인 사람들 사이에 중간지대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피렌체의 예술 거장들이 권문세가의 집에 출입하면서도 권력의 도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중국인들에게 상상하기 힘든 부분이다.


(중략) 메디치가는 겨우 열네 살 밖에 되지 않은 미켈란젤로의 가치를 인정하여 그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다. 미켈란젤로는 성인이 된 후 보은의 마음을 잊지 않고 그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그러나 한때 메디치 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투쟁을 지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로 인해 메디치 가가 그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즉, 보은이든 투쟁이든 그의 어떤 행동 때문에 예술가로서의 창작활동에 영향을 받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중략) 민감한 시대상황에도 예술가들은 항상 편안하게 자신의 뜻대로 멋진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메디치 가를 보면서 고대 중국의 귀족, 관료, 토호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그저 기물을 차지한 채 거문고, 바둑, 서화에 몰입했을 뿐 공공의 영역에서 대대적으로 예술 문화를 특화 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 결과 높은 담장 안에서 자신들만을 위한 온갖 사치를 누리기만 했을 뿐 자신들이 향유한 예술 문화를 다음 세대로 이어줄 수 없었으며, 실질적으로 서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재부를 축척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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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는 로마에서 숨을 거두었음에도 그는 마지막 피렌체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평생독신이었던 그는 친족이라고 해야 조카 하나뿐이었습니다. 조카는 그의 유해를 로마에서 피렌체로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는 지금 피렌체 산타크로체 성당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의 인생의 절정을 맛보게 해준 로마였지만 마음 편한 창조자였던 피렌체가 그리웠던 것일까요?


위우치우의 글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한 도시, 한 가문, 한 차례의 운동, 한 무더기의 상처가 이렇게 뒤엉켜 끊어질 듯 말 듯 역사의 한 부분을 이어갔다. 지금 이렇게 뒤엉킨 역사들은 이제 느슨해질 대로 느슨해지고 닳을 대로 닳아 버려 허술한 모습, 지저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피렌체 여행은 마치 텅 비어 버린 가문의 정원에서 역사와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유일하게 손에 잡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시의 예술가들뿐이다.”

문득, 그의 글을 읽자니 최근 종영 된 드라마 “밀회”의 대사 “음악이 갑이다.”가 떠올랐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의 명제는 마치 “예술이 갑이다” 인 듯 합니다.


21세기 피렌체를 가득 채운 인파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엄청난 부도 찬란했던 권력도 아닙니다. 이들을 부르는 힘은 권력도 부도 아닌 세월 조차 흘러간 자리에 여전히 그 빛을 내고 있는 예술가들의 영혼입니다. 그렇게 영혼에 이끌려 다시 피렌체를 걷기 시작하자 골목길 하나하나 그들의 발걸음이 머문 길이다 싶으니 이제는 도시 자체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동이 스며듭니다. 알고 싶고 보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 표출되고 예술가들은 표현하고 권력은 환경을 만들어 주며 시민들은 그 문화를 누리던 어쩌면 우리가 피렌체에서 느끼고자 하는 욕구의 근원은 그 시대의 정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재미있게 보고 있는 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경쟁을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입니다. 예술까지 경쟁 시켜야 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프로그램의 작가들은 온전히 작품에 몰두하고 자신들의 작품을 선보일 장이 생겼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매 회가 진행될 때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작가들은 성장하고 서로에게 받은 영향은 한단계 더 나아간 작품을 창조해내는 에너지가 됩니다. 출연자 중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예술가의 길을 걷는 남성분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예술은 돈이 많이 드는 분야임에 그는 폐지를 주워 재료를 모으며 작품활동을 합니다. 그가 질문합니다.

“이 시대 예술가가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작품이 팔려야지만 작가가 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전시할 기회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건가요?”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졸업 후 취업이 가장 어려운 학과의 100위권 밖에 모두 예술분야인 것을 보면 진입장벽도 높지만 활동의 영역도 좁은 것이 현재의 예술분야입니다.


그 모습에 피렌체가 떠올랐습니다. 작은 도시로 각국의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이고 글이 그림이 되고 예술가가 건축을 하고 건축의 균형감은 다시 그림의 구도가 되고 모이면 철학을 논하고 서로 시기를 함에도 그 경쟁은 새로운 영감을 선사하고 선대의 시도와 실패가 후대에 완성되어가는 그리고 이 모든 생각들과 예술들이 다시 피렌체 도시 밖으로 뻗어나가는 멋진 연쇄작용이 일어나던 피렌체 말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소수의 지성만이 누리는 예술이 아니라 대중이 함께 누리고 성장하는 예술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지금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예술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원동력이 되고 세상의 모든 분야들이 서로 상호작용하고 하고 있으니 인간과 예술은 함께 성장해야 함을 잊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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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피렌체 가이드로부터 피렌체의 법이 바뀌면서 피렌체의 모든 박물관의 사진촬영이 허가 되었다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과한 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현시대 인간의 예술을 감상하는 수단으로 사진을 받아들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발짝 더 대중에게 예술가들이 다가오도록 말입니다.


처음 만났던 피렌체는 너무 작아 반나절이면 모두가 볼 수 있다고 자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피렌체에 간다면 200년 전 스탕달처럼 까무러치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저의 신분이 여행자라는 것입니다. 만일 예술가라면 그 시대가 너무나 부럽고 그 시대의 예술이 너무나 벅차서 질투로 까무러쳐 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톰 소여의 모헙]을 쓴 마크 트웨인이 이런말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아주 기분이 좋다. 미켈란젤로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제 알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수준까지는 아닐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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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유로자전거나라 김민주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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