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대사관 | 유관기관 | 한인회 | 유학생회 | 기타한인단체 | 한인동포업체 | 주재상사 | 유럽내 추천사이트 | 해외동포 언론사이트

단독 사설
단독 칼럼
단독 인터뷰
독자기고/특별기고
엣세이/여행기/장편소설
유럽한인 취재뉴스
유로저널특집/기획취재뉴스
취재/독자/동영상
한인사회 게시판
정부/대사관 공지
재미있는 유머
경제뉴스
국제뉴스
정치뉴스
사회뉴스
기업뉴스
문화뉴스
연예뉴스
건강뉴스
여성뉴스
스포츠뉴스
내고장소식
독일뉴스
영국뉴스
베네룩스
프랑스뉴스
유럽뉴스
동유럽뉴스
스칸디나비아
스페인/이탈리아
오스트리아/스위스
그리스/터키/포르투갈
유럽각국 전시정보
유럽각국 이민정보
유럽각국 생활정보
유럽각국 교육정보
유럽각국 문화정보
여행기사 정보제공
유럽각국 여행정보
유럽각국 연금제도
유럽소비자 제품평가
공공기관/기업광고
동포업체 및 기타/해외
번역/통역, 관광, 가이드
민박, 하숙, 호텔


조회 수 9492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북한 억류 신숙자씨 모녀 구출 촉구 서명운동


재유럽한인총연합회(회장: 김 훈)는 1985년 독일 거주 중 북한으로 넘어갔다가 정치범 수용소를 거쳐

모처에 억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경남 통영 출신 신숙자씨 모녀의 조기 송환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범

재유럽 한인 차원에서 실시합니다. 재독 동포이자 재유럽 한인동포인 신숙자씨 모녀의 구출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재유럽 한인 여러분들의 동참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현지인들에게도 설명하여

동참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재유럽한인총연합회는 재유럽 한인들의 염원을 담은 서명 결과를 토대로 유럽연합(EU) 인권위원회에

전달하여 EU 차원에서 정식 조사 요청 및 깊은 관심을 촉구할 계획입니다.  


서명 방법
1,WWW.EKNEWS.NET 의 오른쪽 중간에 "북한 억류 신숙자씨 모녀 구출 촉구 서명운동"을 방문

하시여 서명자 희망자의 거주국명,이름,주소,전화번호,메일 주소를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2,유럽 내 각국의 재유럽한인총연합회 임원들이 행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연락처 및 문의처:   재유럽한인총연합회 +44 208 949 3555/ +44 786 8755 848 ,

E-Mail : euko2011@hotmail.com


- 재유럽 한인 총 연합회


* 아래 편지는 신숙자씨의 남편인 오길남 박사가 신숙자씨 모녀 구출울 위해 1992년 9월에 각계에 보낸 내용입니다.

“북에 가는 순간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의 처와 두 딸은 의사와 상관없이 북한에 억류돼 있습니다.

생사 여부조차 알 길이 없습니다. 가족을 다시 만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호소합니다”

나는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나의 처 신숙자(50)와 딸 혜원(16)·규원(14)이 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국제

인권단체의 많은 도움이 있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나는 1942년 3월 11일, 대한민국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인 부산에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62년 국립 서울대학교 독어독문과에 입학하여 1969년 동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 재학 시 저는 서울에 있는 독일문화원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 서울 지부장인 독일인 에리흐홀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도움을 받아 1970년 10월 독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독일 튀빙겐에 있는 튀빙겐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하여 1976년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튀빙겐대학 부속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신숙자(현재 재북 중)와 결혼하여 두 명의 딸을 두게 되었습니다.
큰딸 혜원은 1976년 9월 17일, 독일 킬에서 태어나 킬 근교 크론스하겐에 있는 그림형제(Bruder Grimm)라는

초등학교에 다녔으며, 둘째딸 규원은 1978년 6월 21일, 역시 독일 킬에서 태어나 언니와 같은 학교에 다녔습니다.


나는 독일에서 1974년 3월부터 독일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반한단체인 ‘민건회’에

가입하여 그 구성원들로부터 한국이 독재 정치를 하는 나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1980년 3월 독일 정부에 망명을

하였습니다. 독일 유학 15년이 되던 해인 1985년, 나는 브레멘대학에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과 생산가격

이론의 재구성’이라는 논문을 제출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는 했지만, 나이가 43세나 되어 쉽게 직장을 구할 수가 없었고, 국내에 들어와 대학교수로서

일할 것도 생각해 보았으나, 과거 ‘민건회’라는 반한단체에서 활동했던 경력 때문에 신변에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귀국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교통사고를 일으켜 부상을 당한 데다가, 근무하던

병원에서 혈액을 취급하다 간염에 걸려 휴직 상태에 있었습니다. 때문에 우리 가정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평소 친하게 지냈던 야채상 김종한(52)으로부터 “북에 가서 조국을 위해 경제학자로서

일해 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나는 북한 체제가 나의 전공인 마르크스 경제학과 깊은 연관이 있고,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일해 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독일에 있는 유명한 음악가인 윤이상(75)으로부터 ‘박사 학위 취득을 축하하며 당신의

해박한 지식을 북에 가서 활용해 주기 바란다’는 서신을 받고 입북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김종한의 소개로 동독 주재 북한 대사관에 근무하는(독일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 백 서기관이란 사람을 만나

그로부터 “북한에 가서 경제학자로서 일하게 되면 메르세데스 고급 승용차도 제공받고 여러 가지 연구 활동이 보장

되며 봉급도 많이 받게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백 서기관에게 “나는 마르크스 경제학 추종자로서

북한도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북한에 가서 일해 보겠다”고 입북할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북행하기 직전인 1985년

11월 말경 처와 입북 문제를 의논하였는데, 처음에는 처가 완강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처에게 “우리의

어려운 살림 형편을 극복하고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과 간염을 앓고 있는 당신을 치료하려면 북한에 들어가는 길밖에

없다”라고 강력히 설득하였습니다.
그러자 반대하던 아내는 울면서 어쩔 수 없이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언젠가 입북을

결정한 것 때문에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를 자신은 북한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으나 아내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북한에 들어가서야 깨달았습니다.
1985년, 나와 처자는 대남 공작원인 백 서기관과 백치완(47)에게 독일 망명 여권을 맡기고, 대신 그들이 만들어 준

오경현이라는 가공인물의 북한 공무 여권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동베를린과 모스크바를 거쳐 북한으로 들어

갔던 것입니다. 나는 평양 근교에 있는 순안비행장에 도착하자마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경제학자로서

일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우리 가족은 모두 평양 대동강 부근의 어느 깊은 산속에 있는 동북리초대소에 수용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3개월 동안 외부와 차단된 채 소위 밀봉 세뇌교육을 받으면서 김일성에게 충성을 강요당하는 인간

로봇으로 전락되어갔습니다. 3개월 동안 초대소에서 사상 세뇌교육을 받은 후, 평양시 흥부동에 있는 대남 흑색선전 방송국인

‘구국의 소리’ 방송 요원으로 배치되었습니다.
그곳은 그 방송이 남한 내에 실재하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북한에 의해 납치되었거나 혹은 자진하여 월북한 많은 남한

출신자들이 근무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북한 당국이 남한을 적화 통일하기 위해 만든 공작 기구였습니다. 허황된

거짓을 마치 남한 내에서 방송하는 것처럼 속여 북을 추종하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남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1986년 6월부터 1986년 11월 북한을 탈출할 때까지 이 방송국에서 민영훈 교수라는 가명으로 ‘종속경제 비판’

등에 대해서 녹음하여 이를 남한으로 송출하였습니다. 이렇게 북한 당국은 입북하기 전에 나와 약속한 것과는 달리,

경제학자로서 일할 여건도 제공해 주지 않았으며, 철저하게 나의 개인 생활을 통제하고 나의 요구 또한 완벽하게 무시하며

기만하였습니다. 1986년 11월 25일 구국의 소리 방송국에서 근무하고 있던 중 북한 대남공작기구 책임자인 리창선(67·

현 사회문화부 부장)이 나에게 ‘독일에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 2명을 덴마크로 유인하여 대동 입북시켜라’라는 끔찍한

공작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집으로 돌아와 처에게 이 사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처는 저에게 “인간으로서 도저히 살 곳이 못 되니 당신이 먼저 이곳(북한)을 탈출해 독일

정부에 호소하여 우리를 구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입북하기 직전까지 독일 망명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독일

정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86년 11월, 나는 사랑스러운 처와 귀여운 두 딸을 지옥과

같은 북한에 두고 나왔습니다. 독일 유학생 2명을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유인, 대동 입북하라는 공작을 수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에게는 북한 요원 백치완 등 2명이 따라붙었습니다. 나는 북에서 만들어 준 오경현이라는 가명의 여권을 소지하고 덴마크

코펜하겐 카스트로트 공항으로 침투 중, 공항 사열 요원들의 도움으로 동행한 북한 요원을 따돌리고 극적으로 탈출하여 독일로

돌아와 재정착하였습니다. 나는 북한을 탈출해서 5년 동안 독일에 거주하면서 북한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대남 공작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이상을 만나 그에게 재북 가족을 송환시켜 줄 것을 수차에 걸쳐 간절히 요청하였습니다. 그를 통하여 1987년

10월과 1988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북한에 있는 처로부터 편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처는 평양시 형제산 구역

형산리 8반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후 1991년 1월, 윤이상은 처자의 육성이 녹음된 테이프 1개와 가족사진 6장을 전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윤이상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미제 고용 간첩이다. 은혜를 베풀어 준 김일성 주석을 배반했으므로 가족을 인질로 잡아

둘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다시 입북하여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나는 더 이상 그를 통하여 재북 가족

송환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최후 수단으로 나의 조국인 한국에 들어가 당국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1992년 4월 10일, 저는 독일 주재 한국 대사관에 자수하여 1992년 5월 22일 입국하였으며, 현재 서울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조국에 귀국하기 전인 1992년 3월과 4월 사이에 독일에서 재북 가족의 안전과 송환을 위해 UN민권위원회, 국제사면위원회,

국제적십자사에 불쌍한 재북 가족을 송환해 달라는 간절한 내용의 호소문을 발송했습니다. 1992년 6월, 국제적십자사 홍콩지사로

부터 재북 가족의 근황을 알아보겠다는 연락이 왔을 뿐, 여타 기구로부터는 아무런 응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재북 시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북한에 있는 나의 가족 신변에 위험이 따를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가족들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사 여부조차 알 길이 없습니다. 나는 매일 밤마다 처와 두 딸의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국제인권단체에 간절히 호소합니다. 나의 처와 두 딸은 지금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혹은 묵살당하면서

북한에 억류돼 있습니다. 사랑하는 처와 귀여운 두 딸을 다시 만나 내가 태어난 조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합니다. 진심으로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1992년 9월 오길남

유로저널광고

List of Articles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영국 대다수 영국한인들, 재영한인회장 선거는 무효이고 재선거해야 file 편집부 2024.01.15 2064
공지 영국 재영한인총연합회, 감사 보고 바탕으로 회장 선거 무효 선언하고 재선거 발표 file 편집부 2024.01.02 1646
공지 유럽전체 유로저널 주최 2023 영국 K-POP 대회 대성황리에 개최되어 file 편집부 2023.12.05 2382
공지 유럽전체 제5회 (사)해외동포언론사협회 국제 포럼, 세 주제로 열띤 토론으로 성황리에 개최되어 file 편집부 2023.10.30 2749
공지 유럽전체 2022년 재외동포처 설립과 재외우편투표 보장위한 국회내 토론회 개최 (유로저널 김훈 발행인 참여) file 편집부 2022.12.18 3370
공지 유럽전체 제 4회 (사)해외동포언론사협회 포럼에서 재외동포기본법과 재외선거 관련 4시간동안 열띤 토론 진행 file 편집부 2022.11.14 4247
공지 유럽전체 유럽 영주권자 유권자 등록 불과 최대 855명에 불과해 편집부 2022.01.25 5279
공지 유럽전체 제 20대 대선 재외국민 유권자 등록 '매우 저조해 유감' file 편집부 2022.01.22 5491
공지 유럽전체 유로저널 유럽 한인 취재 기사 무단 전재에 대한 경고 편집부 2021.06.12 12117
공지 유럽전체 제 3회 (사)해외동포언론사협회 국제포럼 성황리에 개최해 file 편집부 2019.11.06 33835
공지 유럽전체 제2회 (사) 해외동포언론사협회 국제포럼 깊은 관심 속에 개최 편집부 2019.06.07 36476
공지 유럽전체 (사)해외동포언론사협회, 철원군 초청 팸투어 통해 홍보에 앞장 서 편집부 2019.06.07 37125
공지 유럽전체 제 1회 (사)해외동포언론사협회 해외동포 언론 국제 포럼 성공리에 개최되어 file 편집부 2018.10.30 40862
공지 유럽전체 해외동포 언론사 발행인들,한국에 모여 첫 국제 포럼 개최해 file 편집부 2018.10.20 36678
공지 유럽전체 유총련은 유럽한인들의 대표 단체인가? 아니면 유총련 임원들만의 단체인가? 편집부 2018.03.21 41974
공지 영국 [유로저널 특별 기획 취재] 시대적,세태적 흐름 반영 못한 한인회, 한인들 참여 저조와 무관심 확대 file 편집부 2017.10.11 50582
공지 유럽전체 '해외동포언론사협회' 창립대회와 국제 포럼 개최로 동포언론사 재정립 기회 마련 file eknews 2017.05.11 64499
공지 유럽전체 유럽 한인 단체, 명칭들 한인사회에 맞게 정리되어야 eknews 2013.03.27 66758
공지 유럽전체 해외 주재 외교관들에 대한 수상에 즈음하여(발행인 칼럼) eknews 2012.06.27 72973
공지 유럽전체 재유럽 한인 대표 단체 통합을 마치면서(정통 유총련: 회장 김훈) file eknews 2012.02.22 65689
공지 유럽전체 존경하는 재 유럽 한인 여러분 ! (정통 유총련 김훈 회장 송년 인사) file eknews 2011.12.07 77210
공지 유럽전체 유럽 한인들을 위한 호소문 (정통 유총련 회장 김훈) file eknews 2011.11.23 89711
공지 유럽전체 유총연 대정부 건의문(정통 유총련: 회장 김훈) file eknews 2011.11.23 96183
» 유럽전체 유총연 (회장 김훈) , 북한 억류 신숙자씨 모녀 구출 촉구 서명운동 eknews 2011.11.23 94928
공지 유럽전체 '유총련’임시총회(회장 김훈)와 한-벨 110주년 행사에 500여명 몰려 대성황이뤄 file eknews 2011.11.16 105888
공지 유럽전체 재유럽 한인 두 단체에 대한 유총련의 입장(통합 정관 부결 후 정통유총련 입장) file eknews05 2011.10.31 89034
공지 유럽전체 유총연 임시총회,통합 정관 부결로 '통합 제동 걸려' (제 9대 신임회장에 김훈 회장을 만장일치로 선출) file eknews 2011.09.20 98287
공지 유럽전체 재유럽한인 총연합회 전현직 임원,그리고 재유럽 한인 여러분 ! (통합관련 총회 소집 공고) eknews05 2011.09.05 93218
6308 독일 아헨 한인회 추석행사-발판이 되어 주신 어르신들께 감사 file eknews05 2024.09.28 418
6307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모니 앙상블 정기 음악회: „사랑은 아름다워라“ file eknews05 2024.09.17 161
6306 독일 (사) 재독한인장애인총연합회 2024년 두 번째 정기총회 개최 및 음악세미나 file eknews05 2024.09.15 247
6305 영국 영국 에든버러 축제에서 한국 예술가들의 대활약 file 편집부 2024.09.13 47
6304 영국 주영한국문화원 특별전 <디지털 문화유산, 인공지능과 함께> 개최 file 편집부 2024.09.13 34
6303 독일 재독한인문학의 역사 20년, 재독한국문인회 창립 20주년 기념회 개최 file 편집부 2024.09.13 42
6302 유럽전체 제1회 유럽 아프리카 한인 테니스 대회, 5개국이 참가해 개최 file 편집부 2024.09.12 138
6301 독일 인천에서 열린 제23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대회에 독일코윈 참가 file eknews05 2024.09.06 33
6300 독일 2024년 재독 영남 향우회 잔치-영남인은 외국자 file eknews05 2024.09.03 330
6299 독일 독일 함부르크 한인회, 강 맨발걷기 개최해 한인들 대거 참석해 file 편집부 2024.09.01 307
6298 독일 제 79 주년 8.15 광복절 기념 재독 한인 골프대회-1.5세 회장 협회운영 모범 보여 file eknews05 2024.08.25 100
6297 독일 제79주년 광복절 경축 기념 행사 및 제52회 전국체육대회-재독한인총연합회와 재독일한인체육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축제의 한마당 file eknews05 2024.08.22 643
6296 독일 약 22년째 함께 하는 아리랑 무용단과 고진성 지도 교사-내년 한국 공연 기획 file eknews05 2024.08.22 53
6295 영국 한국 여름 사찰 음식의 미학, 영국에서 르 꼬르동 블루 런던 협력 속에 개최 file 편집부 2024.08.21 36
6294 영국 런던에서 워킹투어하면서 K-팝 듣고 한국문화 체험 가져 file 편집부 2024.08.21 38
6293 독일 재독한인문화회관 2024년 임시총회-회관의 소중함 file eknews05 2024.08.20 47
6292 독일 쾰른 한인 여성 합창단 제 21회 쾰른 음악축제참가 file eknews05 2024.08.12 158
6291 유럽전체 유럽총련, 제4회 꿈과 기적 향한 청소년 통일캠프 대성황 속에 개최 file 편집부 2024.08.12 648
6290 독일 재독 한인 테니스협회 주관, '교민 테니스 대회' 성황리 개최 file 편집부 2024.08.05 85
6289 영국 영국 한인음식축제, 뉴몰든 한인타운에서 성황리에 개최돼 file 편집부 2024.08.05 66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316 Next ›
/ 316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연락처 | 회사소개 | 광고문의 | 찾아오시는길 copyright@ EKNews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