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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2018.04.02 00:40

오을식의 장편 연재 소설 (59) -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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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밤의 연가

“지금도 생생해. 이른 봄 초저녁이었어. 막 뒷물을 끝내고 나오는데 바로 다음 손님이 들어왔지 뭐야. 좀 후줄근한 차림의 오십대 아저씨였지. 근데 침대로 안내를 하다 말고, 순간 기가 막혔어. 이 남자 등에 애기가 있었거든. 세상에 이런 무지막지한 인간이 있나 싶어 당장 나가라고 악다구니를 썼지. 생각해봐. 윤락업소에 오입질을 하러 온 인간이 애기를 들쳐 업고 나타났으니. 아무리 그거에 굶주려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하다 싶었어.”
“아, 그러니까 그 손님 등에 있는 애기가 바로 아까 말한 난쟁이였구나.”
복도 저편을 살피며 정아가 끼어들었다. 
“맞아, 근데 그걸 나중에야 알았지. 내가 시끄럽게 구니까 포주가 달려왔는데, 이 여자가 오자마자 내게 쌍욕을 하는 거야. 왜 손님을 차별하느냐고. 아마 이미 밖에서 얘기가 된 모양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참 섭섭했지. 내편을 들어줘도 시원찮을 판에 그리 모질게 구니까. 그 사이에 아저씨가 애를 침대 위에다 내려놓더라고. 순간 난 진짜 기절하는 줄 알았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아. 아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으니.”
“아니, 아기가 아니라는 것도 그렇지만, 솔직히 난 무슨 괴물인 줄 알았어. 인간이면 누구나 달려있어야 할 팔과 다리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세상에나, 그냥 난쟁이가 아니었구나. 하고 정아가 탄식했다. 
“그렇다니까. 난 이게 꿈인가 생신가 한 거야. 놀란 내가 두어 걸음 물러섰지. 그때 아저씨가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면서 그러는 거야.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세상에 하나 뿐인 내 아들이라고. 장가갈 나이의 아들인데 애비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염치불구하고 왔노라고. 그러고는 구겨진 수표 두 장을 내손에 쥐어주었지. ...나는 생각했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수표를 바라보는 포주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의식하며 일단 알았다고 나가 계시라고 했지. 돈 때문에 받은 건 아니었어. 어차피 받은 돈은 모두 포주 손으로 들어가던 때였으니까. 고백하자면 아저씨의 애절한 눈빛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고나 할까. 나는 지금도 아저씨의 그 눈빛이 잊어지지가 않아. 그때껏 내가 봤던 제일 아프고 애절한 눈빛이었거든. 어쨌든 허락은 했지만 참 난감했지.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겠는 거야. 거긴 대개가 삼만 원짜리 숏타임 손님들이어서 아가씨들은 아래만 벗고 수동적으로 흔들리다 보면 곧 사정이 끝나거든. 근데 이 특별한 손님은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이니 도리 없이 내가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했지. 몇 번을 주저하다가 옷을 벗기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 거야.”
“그랬을 것 같아. 얼마나 황당한 일이니.”
정아의 위로에, 영미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그런 황당함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갑자기, 정말 뜬금없이, 풍뎅이 생각이 나서 울컥했어.” 
“풍뎅이? 날아다니는 곤충 말이야?”
“그래, 그게 산란기가 되면 들에서 날아와 집 사방 어디에나 붙어있어. 어릴 때, 동생이랑 나는 그거 잡아다 마루나 방바닥에 놓고 억지로 춤을 추게 하는 놀이를 즐겼지. 풍뎅이 춤은 요즘 비보이들이 바닥에 등을 대고 뱅뱅 도는 춤과 흡사했는데, 풍뎅이를 그런 춤꾼으로 변신시키려면 우선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했어. 도망가지 못하게 다리를 모두 떼어버리는 수술. 그런 다음 풍뎅이의 목을 태엽을 감듯 한 바퀴쯤 돌려서 배를 하늘로 보게 바닥에 내려놓지. 그럼 풍뎅이는 미친 듯이 날개를 파닥거려 춤을 추거든. 뱅뱅 돌면서 숨이 멎을 때까지. 우린 그게 재미있어서 허구한 날 풍뎅이를 잡아서 다리를 뜯고 목을 돌렸어. 근데 눈앞에 팔과 다리가 없는 왜소한 몸뚱이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어릴 적 버둥거리던 그 풍뎅이가 떠오른 거야.”
영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아는 다리가 뜯겨 버둥거리는 풍뎅이를 떠올렸다. 그런 놀이를 해본 적이 없어서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그걸 사람의 몸에 대비하니 끔찍해졌다. 
복도 저편 매화실 문이 열리며 장 마담이 나타났다. 
“너희들 뭐하고 있는 거야! 빨리 오지 못해?”
장 마담의 닦달에 영미가 얼른 죄송합니다! 하고 허리를 굽혔다. 정아도 따라했다. 풍뎅이 얘기는 나중에 더 해줘, 하고 정아가 귀엣말로 속삭였다. 장 마담이 두 사람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갈겼다. 
매화실로 들어가니, 다들 자리를 정리하는 분위기였다. 정아가 들어가자 더벅머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리에 앉으니 옆의 터틀넥이, 아가씨를 기다리느라 내 아우의 목이 기린처럼 늘어났다고 엉너리를 쳤다. 형의 말에 더벅머리가 목을 쭉 빼보였다. 정아는 빠진 목을 끼우는 시늉을 하고는 볼에 입을 맞춰주었다. 
“정아가 아주 일취월장이구나.”
손에 꽃다발을 든 장 마담이 정아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주위의 시선이 일제히 꽃다발에 쏠렸다. 장 마담이 꽃다발을 정아에게 내밀며 큰소리로 말했다. 
“이건 회장님께서 보내주신 축하의 꽃다발입니다. 우리 신입 다찌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박수 한 번 주세요!”
모두 손뼉을 쳤고 아가씨들은 와, 하며 탄성을 더했다.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하고 붉은 터틀넥의 파트너가 부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저쪽 돌아보며 목례를 한 정아는 꽃다발을 더벅머리의 품에 안겨주었다. 이번에는 남자들이 환호했다.  
장 마담의 안내가 시작되었다. 이제 손님들을 호텔로 모실 시간이라며, 파트너와 함께 시내로 나가 쇼핑도 하고 목도 축이면서 마음껏 즐기라는 내용이었다. 아가씨들을 향해서는 오늘부터 개인플레이 금지다, 하고 타이르듯 말했다. 정아는 그것이 정해진 코스를 이탈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일 거라 짐작했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정아가 더벅머리를 부축했다. 그는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우뚝 섰다. 저편에서 더벅머리의 약간 되똑이는 걸음걸이를 지켜보던 영미가 정아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아가 막 매화실을 나서려는데 장 마담이 정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정아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주 잘 하고 있다. 아주 예뻐. 네게 전달 사항이 있는데, 이따 호텔로 가서 방 배정 받을 때 프런트에다 1018호 손님이라고 알려줘라. 그러면 거기 객실과장이 예약된 일반 객실에서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줄 거야. 넌 모르겠지만 그 방은 내가 다찌가 되어 첫 손님을 받았던 전통 있는 객실로, 너에게 아주 좋은 기운을 줄 거야. 머리를 올리는 신입에게 주는 특전이자 우리의 우림각의 배려이니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고.”
정아는 다시 허리를 공손히 접었다. 장 마담이 주위를 살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한테는 사실 이게 더 중요한 얘기일 텐데, 회장님이 네 채무를 조금 전에 해결해주셨다. 그것도 직접. 이건 대단한 특혜이자 편애야. 무슨 얘긴 줄 알지? 이자도 우림각 공식 이자보다 낮게 책정해주셨고. 그건 그만큼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반증일 테니 앞으로 정성을 다해서 깍듯이 모시렴.”
정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강 회장의 얼굴과 미친개의 일그러진 표정이 차례로 떠올랐다가 스러졌다. 정아는 거푸 허리를 접으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장 마담이 정아를 안아주었다. 
정아는 마음이 벅차올라 몸마저도 붕붕 뜨는 느낌이었다. 마음먹고 땅을 박차면 우림각의 높다란 담장도 너끈히 날아서 넘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이제 되었어. 정아는 입술을 깨물며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야, 뭐하고 있어? 네 짝꿍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이니?”
밖으로 나갈 준비가 끝난 영미가 저편에서 정아를 향해 소리쳤다. 정아는 그제야 출입문을 등지고서 마치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처럼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더벅머리를 발견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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