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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24.03.17 06:50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 또한 창조의 욕망 – 뱅크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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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 376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 또한 창조의 욕망 – 뱅크시 1
1. ‘사랑은 쓰레기통에(Love is in the Bin)’ 2018년 10월 5일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뱅크시의 작품 ‘풍선을 든 소녀 (Girl with the Balloon)’가 104만2천 파운드(당시 환율로 16억 9천만 원)에 낙찰됐다. 경매에 나온 ‘풍선을 든 소녀’는 뱅크시의 2006년 작으로, 캔버스 천 위에 스프레이 캔과 아크릴 물감으로 풍선을 날리는 소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Banksy, Girl With a Balloon, 2006 (사진출처:BBC)
이것은 2002년에 그래피티의 형식으로 처음 완성되었다. 뱅크시의 '풍선을 든 소녀' 원작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이 날, 경매장에서 경매사가 망치를 두드려 낙찰을 알리자마자, 사상 최초의 희대의 사건이 벌어졌다. 작품이 파쇄되기 시작한 것이다. 소더비는 당황한 나머지 작품 훼손의 범인을 색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다음날 뱅크시는 경매장에서 발생한 일이 본인의 소행임을 알리는 동영상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전 장치 설치부터 분쇄 장치를 작동시킨 버튼, 그림이 파쇄된 당시의 상황, 그리고 새로운 작품의 탄생 과정을 담은 2분 57초 길이의 마치 단편 다큐멘터리같은 영상을 통해 뱅크시는 자신이 직접 액자 내부에 숨겨둔 파쇄기를 작동해 작품의 일부를 찢어버렸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는 동영상을 통해 작품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가 파쇄되는 것이 목적이었음을 밝혔다. Banksy, Love Is in the Bin (사진출처:CNN)
소더비가 이 작품을 뱅크시로부터 받았을 때 작품의 액자 두께는 보통 액자의 2배였고, 작품의 무게도 꽤 나갔다고 한다. 분쇄 장치가 내장돼 있었으니 그럴만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더비는 액자가 작품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지침을 작가로부터 받았을 뿐, 자신들은 이번 사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분명하게 표명했다. 그리고 "작품은 보이는 데로 본다. 조각과도 같다. 작가가 액자가 중요하다고 하면 액자를 놔둔다"고 덧붙였다. 뱅크시도 영상에서 “몇몇 사람들이 작품이 실제로 잘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품은 파쇄된 것이 맞다. 또한 소더비가 파쇄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이는 사실무근이다”라고 밝혔다. 이런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낙찰 받은 유럽 출신의 여성 미술 수집가인 고객은 약 16억 9천만 원에 작품 구매를 주저없이 결정했다. 그녀는 “당시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이는 미술 역사의 한 조각”이라고 말하며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후, 이 작품은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바덴바덴 프리더 부르다 미술관에 전시됐다. 미술관은 작품이 추가로 훼손되는 것을 우려하여 2019년 2월 4일 분쇄기를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미술관의 헤닝 샤퍼는 방문객이 실수로 분쇄기를 작동시킬 가능성을 배제하고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미술관은 해체 작업을 위해 언론을 초대했고, 흰 장갑을 낀 미술관 직원들이 천천히 그리고 조심히 분쇄 장치를 떼어냈다. 작업 후, 샤퍼는 액자를 열고 살펴 작동이 멈춘 것을 확실하게 확인했다고 했다. 박물관 직원들이 분쇄기를 떼어내는 모습 (사진출처:BBC)
이렇게 경매장에서 절반가량 파쇄된 작품 ‘풍선을 든 소녀(Girl with the Balloon)’는 분쇄 장치가 해체된 후, 2021년 ‘사랑은 쓰레기통에(Love is in the Bin)’라는 새 이름으로 다시 경매장에 나왔다. 이번에는 그전 낙찰가의 18배인 1천870만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304억원)에 낙찰되면서 뱅크시 작품 사상 최고가 거래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현재 이 작품의 가치는 3조 2,650억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에 장기 대여 중인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2023년 9월에 열린 ‘제 2회 프리즈 서울’을 앞두고 파라다이스시티가 소더비와 함께 ‘러브 인 파라다이스: 뱅크시 앤 키스 해링)’전을 개최하면서 공개된 바 있다. 이제는 이런 뱅크시의 콘셉트를 흉내내거나 패러디하면서 자신의 작업을 파괴하는 작가들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뱅크시의 '풍선을 든 소녀' 패러디 작품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그런데,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직접 파손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경매장에서 말이다. 뱅크시가 이런 ‘쇼’를 벌인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 또한 창조의 욕망(The urge to destroy is also a creative urge)’이라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하면서 계획적으로 이 작품을 파쇄해 회화 작품에서 하나의 오브제로 바꾸고자 했다. 누군가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경찰이 된다. 누군가는 세상을 좀 더 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파괴자가 된다. – 뱅크시 - 뱅크시가 자본주의와 미술시장을 비꼬는 이런 작업을 한 것은 사실 처음이 아니었다. 어떠한 신상정보도 알려지지 않아서 ‘얼굴 없는 화가’로 불렸던 그는 등장할 때부터 현대의 미술의 상업성과 반전, 반권력 메세지를 주로 작품에 담으면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뱅크시의 이번 해프닝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의견이 갈렸다. 어떤 이들은 ‘역시 뱅크시답다’라고 하면서 극찬을 했고, 또 다른 이들은 ‘이 또한 뱅크시가 자신의 작품값을 올리기 위한 술책이었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비판했다. 그런데, 뱅크시를 혐오하는 것으로 유명한 평론가인 영국 ‘가디언’지의 조나단 존스(Jonathan Jones)는 이번 해프닝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이번만큼은 이 예술가는 예술을 오로지 상품으로만 여기는 시스템 전체에 강력한 한 방을 먹였다. 소더비에서 벌어진 사건은 뱅크시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그는 해야할 말을 했다. 예술은 돈에 질식되어 죽어가고 있다. 시장은 상상력을 돈벌이로, 반항하는 예술을 권력자의 집을 꾸미는 장식물로 바꾼다. 이제 할 수 있는 유일한 반란은 예술작품이 팔리는 순간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다.” -조나단 존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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